1. 네이버나 카카오맵 같은 한국 지도 서비스에 위장처리된 보안지역은 구글영상뿐만 아니라 오픈스트리트맵을 통해서도 다 볼 수 있다. 구글맵은 한국의 티맵을 서비스하기에 일반 지도가 아니라 위성영상을 통해서만 용산이나 군사지역을 살펴볼 수 있지만, 오픈스트리트맵에서는 다양한 위성영상과 함께 일반 지도를 통해서도 보안지역을 들여다볼 수 있다. 대통령실과 여러 보안지역 내부의 건물 배치, 이름까지 다 표시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외국인은 아무 제약 없이 구글맵과 오픈스트리트맵을 이용해 한국의 대통령실과 보안시설을 살펴볼 수 있지만 내국인은 그렇지 않다. 외국인에게는 보안지역 정보가 공개된 상태에서 내국인만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을 '보안조치'라 부를 수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2. 오픈스트리트맵이 한국 보안시설을 그대로 노출하다 보니 이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몇 차례 있었다. 오픈스트리트맵 커뮤니티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적 상황을 반영해 보안지역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도 했고, 오픈스트리트맵을 사용하는 국내 회사나 기관에 공문을 보내 사용자제를 강권하기도 했다. 또 그즈음, 누구나 지도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오픈스트리트맵의 특성을 활용해 한국의 '보안지역'을 오픈스트리트맵에서 지우려는 시도도 상당했다. 새로운 편집자로 등록한 이들이 보안지역만 찾아 일괄 지우는 행태를 보였던 것. 물론 이들의 행동은 '반달리즘'으로 규정되었고 훼손되었던 보안지역 데이터들은 모두 복원되었다.
3. 오픈스트리트맵의 보안과 관련한 정책은 단순하다. 하늘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매핑할 수 있으며, 개별 국가의 국가안보와 관련한 요구를 따르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오픈스트리트맵의 사용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푸틴이 러시아 국방부를 방문한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때 푸틴 등 뒤로 우크라이나 지도가 넓은 화면을 통해 펼쳐져 있었는데 그 지도가 바로 오픈스트리트맵이었다. 전 세계 사용자의 자발적 참여로 만든, 아니 우크라이나 지도였으니 주로 우크라이나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든 오픈스트리트맵이 러시아 침략을 돕고 있었던 것. 커뮤니티는 들끓었다. 러시아의 오픈스트리트맵 사용과 편집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날 선 논쟁이 오갔지만 결국은 오픈소스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선에서 논쟁은 정리됐다. 그 참여자, 사용자가 러시아든 북한이든 이란이든 오픈소스 정신에 따라 그들의 참여와 사용을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누군가의 사용을 제한하는 건 쉽지만 그건 곧 도미노처럼 다른 사용자의 사용제한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생태계의 공멸과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북한에서도 GeoServer, PostGIS, OpenLayers를 사용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발표한 논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북한의 OSGeo 프로젝트 사용에 대해 OSGeo도 비슷한 입장이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걸 막아서는 안 된다고.
4. 지금으로부터 딱 22년 전, 그러니까 2001년 3월 당시 아프칸을 통치하던 탈레반은 전국에 산재한 불상을 다이너마이트와 로켓, 심지어 탱크를 동원해 무차별적으로 파괴했다. '신은 하나이니 우상을 섬길 수는 없다.'는 탈레반의 정의로움이 파괴를 이끌었다. 이때 그 유명한 바미안 대석불도 파괴되었고, 전 세계는 이 소식에 경악했다. 그 유적이 탈레반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인류 전체의 유산이라고 다들 믿었기 때문이다. 오픈소스를 하는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공감대가 있다. 전 세계의 얼굴도 이름도 국적도 성별도 직업도 모르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들어 낸 이 성과물(지도가 되었든 프로그램이 되었든)은 어떤 특정 국가나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자산이라는 그런 공감대 말이다. 커뮤니티 리더들이 이런 공감대를 유지하고 있기에 가끔은 특정 국가나 집단의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결정을 내리곤 한다. 물론 개개인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지만 말이다.
5. 빌 브라이슨은 인류가 이제야 조금씩 특정 국가와 인종 중심에서 벗어나 인류나 문명을 하나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했던 말이다. 생김새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매번 깨닫지만 다시금 망각과 실수의 심연으로 빠져든다.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잡설도 길었고.
2023년 3월 1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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