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가 동성애가 불법이었던 시기 영국의 이성애자 판별 테스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존재란 내가 무엇이든간에 타인이 다르게 본다면 그렇게 규정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 내가 보는 나도 나지만 남이 보는 나도 나라는 사실.
현대미학자 조지 디키의 '제도로서의 예술론'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예술이란, 제도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예술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라는 주장. 근대 이후 철석 같았던 객관적 실재와 개인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양자역학이나 뇌과학에 의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는 느낌도 들고.
이 기차 밖의 풍경은 현실일까? 가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할 때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의심이 들곤 한다.
2017년 10월 27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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