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통적 라이벌인 좌파와 우파가 동시에 지지하는 정책이 있다. 바로 외국인 노동자 유입 정책이다. 좌파는 보편적 인권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이나 우파는 노동 의욕이 충만한 노동자나 산업예비군을 저임금에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 정책을 환영한다.

  2. 지난 1월 봉준호 감독은 미국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돌발적인 질문을 받았다. "당신 영화를 사회 혁명을 일으키는 시작이라고 봐도 되는가?" 이 질문에 봉 감독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혁명이란 것은 뭔가 부서뜨려야 할 대상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게 뭔지, 혁명을 통해 깨뜨려야 되는 게 뭔지 파악하기가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3. 위 사례 모두 이제 전통적인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노동과 자본의 구도로 정치와 사회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책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원제: The Road to somewhere, 번역:김경락)'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이 잠깐 돌출된 '비정상'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쌓여온 '애니웨어(Anywhere)'와 '섬웨어(Somewhere)'라는 두 집단 간의 갈등의 산물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4. 저자 데이비드 굿하트에 따르면 영국 등 선진국에는 애니웨어와 섬웨어라는 두 가치 집단이 있다. 애니웨어는 교육 수준이 높고 이동성이 강하며(Anywhere) 자율과 개방, 능력주의를 지지한다. 이들은 급격한 사회변화에도 불안감을 느끼지 않으며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이 있다. 이들은 소수 집단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주요 국가의 정치와 사회를 지배해 왔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반면, 섬웨어는 어딘가(Somewhere)에 뿌리를 내리고, 급격한 변화를 반기지 않는 이들이다. 공동체와 전통, 안정적 일자리와 소득을 중시한다. 중하층 노동자들이 주로 여기에 속하지만 지난 수십 년 간 이들은 그저 '잊힌 사람들'이거나 변화를 거부하는 천덕꾸러기에 다름 아니었다. 

  5.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은 수십 년간 정치 지평에서 소외되었던 섬웨어의 반격이라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에 주목한다. 사람은 누구나 뿌리를 내리고 공동체에서 인정 받고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진 채 넉넉한 부와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본성 말이다.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애니웨어의 과도한 세계화와 자유화 탓에 이제 섬웨어들은 정체성, 직업, 소득, 주거,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동안 세계화의 성과와 기대는 과대평가된 반면에 실제 피해와 부작용은 과소평가되거나 아예 의제 밖으로 밀려났다. 

  6. 저자는 애니웨어와 섬웨어라는 분석틀을 이용해 주로 영국과 유럽의 정치 변화를 읽어내고 있다. 포퓰리즘의 등장, 세계화의 부작용, 이민 정책과 사회통합, 지식 경제 중심의 산업 구조 재편, 능력주의, 가족과 여성 등 사회 전분야에 걸쳐 흥미로운 여러 문제제기를 한다. 좌파나 애니웨어의 위선적인 모습이 곳곳에서 들춰지기도 한다. 불편하지만 새겨들을 말들이 많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영국 내 교육, 여성, 가족, 복지 등의 문제는 상당 부분 한국에서도 곱씹어봐야 하는 것들이다. 

  7. 저자의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명확하다. 아직도 사회공동체로서의 국민국가 개념은 유효하며 많은 정책의 우선순위에 자국민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국의 가난한 계층이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의 등장을 그저 못 배운 이들의 무질서한 분노 표출 정도로 치부할 게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애니웨어와 섬웨어의 균형을 찾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애니웨어와 섬웨어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따갑다. 번역자인 한겨레신문의 김경락 기자가 한국판 책 제목을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로 잡은 건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2020년 2월 16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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