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주년

낙서장 2021. 2. 13. 00:05

 

1. 내가 한 여자랑 20년을 살다니 정말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다가 나같이 찌질한 놈이랑 결혼하고 20년을 산 아내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2. 결혼식은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전통 혼례로 올렸다. 나나 아내나 둘 다 서양식 결혼식에 관심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돈이 없어 저렴하게 결혼할 곳을 찾다가 남산골 한옥마을을 알게 된 것.

 

3. 남산골 한옥마을은 서울시가 운영했는데 전통 혼례가 일종의 살아 있는 관광상품이라 대관료는 받지 않았고 대신 관광객이 사진을 찍더라도 문제 삼지 않는다 등의 몇 가지 사항에 대해 동의해야 했다.

 

4. 실제로 전통 혼례를 여기서 올리니 외국인 관광객이 와서 사진 찍으며 진짜 결혼식이냐고 묻기도 했다. 일본 동경TV에서는 한국 전통혼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찍다가 우리 부부 결혼식을 촬영해 갔고 나중에 일본어로 방송된 프로그램을 소포로 우리 집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지금도 그 비디오 테이프를 가지고 있는데 VTR이 없어 다시 돌려보지 못하고 있다.

 

5.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결혼해 돈이 한 푼도 안 든 건 아니었고 전통 혼례를 주관하는 단체에 60만 원인가 냈고, 하객분들께 잔치국수(!) 대접하느라 식대가 나갔다. 하객분들께 약속한 대로 진짜로 잔치국수 대접했다.

 

6. 짠돌이스럽게 결혼식에 쓰는 돈을 아끼고 아꼈는데 불필요한 곳에 돈 쓰고 싶지도 않았지만, 실제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다. 결혼 비디오는 이제는 미국 모 대학교 교수가 된 지인이 찍어 줬고, 사진은 동아리 후배와 처가댁 친척분이 찍어 주셨다.

 

7. 내게 들어온 축의금 중 식대 지불을 마친 모든 금액은 홀로 자식을 키워주신 어머니께 드렸다. 내 앞으로 들어온 것, 어머니 앞으로 들어온 것 모두 다 드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고 우리 형, 그리고 내 두 여동생 모두 그렇게 축의금을 어머니께 드렸다.

 

8. 신혼여행은 네팔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카트만두 왕복 항공권만 예약하고 배낭만 둘러멘 채 네팔로 향했다. 근데, 네팔 가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싸우기 시작해 7박 9일간 신혼여행의 반 이상을 싸우며 지냈던 것 같다.

 

9. 신혼여행 첫날밤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로 싸움은 시작되었다. 난 평생 한 번 있는 특별한 날이니 카트만두 하얏트에서 첫날밤을 보내자고 주장했고 아내는 모든 날이 특별한 날이라며 배낭 여행객이 묵는 저렴한 숙박시설에서 지내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하루에 8달러인가 하는 모텔에서 신혼여행 첫날밤을 보냈고 카트만두에 있는 내내 그 모텔에서 지냈다.

 

10. 한 번 시작된 싸움은 카트만두에서 지내는 동안 계속되었는데 싸움의 끝은 언제나 한국 돌아가면 이혼하자는 쌍방 외침이었다. 근데, 사실 혼인신고도 안 한 상태여서 이혼할 것도 없었다.

 

11. 카트만두에서는 계속 싸웠지만 포카라로 넘어가고서는 어찌어찌 잘 지내기 시작했다. 푸아 호수에서 같이 보트도 타고 사랑곳도 이른 새벽에 오르고 데비스폴에서 슬픈 이야기도 들으며 말이다.

 

12. 신혼집은 봉천동의 보증금 3,200만 원짜리 다세대 전세 주택에 얻었다. 결혼할 때 아내가 1,500만 원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가진 돈이 1,700만 원이어서 탈탈 털어 저 전세를 얻었던 것.

 

13. 대학 근처의 방 두 개 있는 12평인가 13평인가 하는 집이었다. 세간살이는 아내가 자취할 때 쓰던 물건과 내가 쓰던 물건을 합해서 마련했다. 아내가 자취할 때 쓰던 침대와 TV, 내가 자취할 때 쓰던 컴퓨터 뭐 이런 걸 그냥 그대로 사용했다. 결혼할 때 선물로 받은 식기류 같은 건 요긴하게 잘 썼다. 그때 코렐을 선물 받았는데 지금도 쓰고 있다.

 

14. 애는 갖지 않기로 합의하고 결혼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나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결혼 후 5~6년 지나고서부터 조금씩 아내에게 애를 갖자고 이야기를 건넸는데 아내가 태도를 바꾸는 데는 나보다 아내 주변 지인들의 조언이 컸다. 지금도 그분들께 감사!

 

15. 아내가 애를 낳고 기르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 애를 낳은 것이라고 말할 때 감동스럽기도 했다. 내가 봤을 때도 우리 부부가 가장 잘한 일은 이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를 이 땅에 데려온 거다.

 

16. 애가 자기 용돈을 털어 엄마와 아빠의 결혼 20주년을 축하하는 케이크를 선물해 줬다. 앞으로도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랄 뿐이다.

 

2021년 2월 10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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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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