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서는 전라도 궁벽한 산골의 훈장님이셨다. 어린 손주를 붙잡고 한문, 붓글씨, 삼강오륜, 명심보감 같은 걸 가르치시기도 하셨는데 얌전하고 차분했던 형이 그런 가르침을 잘 받아들였던 반면 까불이였던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어떤 식으로든 도망만 다녔다. 그런 덕분인지 형은 문중 대소사나 제사 때 붓글씨를 도맡아 쓰셨다. 내게는 아무도 그런 부탁을 하지 않는다.

 

공부 안 하고 도망다녔어도 눈을 반짝이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었는데 그건 할아버지가 고려사나 조선사 같은 옛 이야기를 해 주실 때였다. 궁예, 견훤, 왕건, 그리고 시조 할아버지인 신숭겸 장군의 영웅담 같은 건 몇 번을 들어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신숭겸 장군이 왕건의 옷을 입고 왕건으로 위장해 최후를 맞이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춘천에 있는 신숭겸 장군의 3묘 중 하나에 황금머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호기심에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내는 어린 탐정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다른 곳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는 주장도 할아버지께 처음 들었다. 임란을 끝낸 승장이건만 전후 당파싸움에 이순신 장군이나 가족이나 결국 죽음을 면치 못 할 것을 직감하고서 죽음을 위장했다는 내용이다. 대학 다니다 이순신 장군 위장사망설이 새로운 학설인냥 매스컴에 보도되었을 때는 이게 뭐지하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옛 이야기를 마치며 언제나 교훈삼아 손주들에게 부탁을 하곤 하셨는데 커서라도 정치는 절대 하지 말라는 당부셨다. 정치를 하면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 어떤 식으로든 큰 고통을 받게 되더라는 주의셨다. 근대적 교육을 받고 자라난 나는 지금껏 정치인이나 검사나 판사나 엔지니어나 농부나 요리사나 모두 평등한 공화국의 시민이자 직업인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이게 헛된 믿음이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아직 할아버지의 시대이고 근대화의 길은 멀기만 하다.

 

2020년 12월 26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