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낙서장 2021. 12. 31. 23:24

1. 이사
2021년은 이사로 시작했다. 30년 가까운 서울 생활을 접고 세종으로 이사했다. 가까운 곳에 백화점과 기차역이 없다는 점을 빼놓고는 세종 생활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사장이 세종으로 이사했으니 회사도 옮겼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곤 하는데 사무실은 그대로다. 서울에 본사와 지사, 그리고 대전에 지사가 있다. 세종에서는 주로 대전 지사로 출근한다. 많으면 1주일에 한두 번, 적어도 2주에 한 번 가량은 서울 본사나 지사로 가서 일을 보곤 한다. 

 

2. 전학
집이 이사를 했으니 애도 전학을 했다. 이사를 고민하며 걱정스러웠던 게 애의 심리적 안정과 교우 관계였다. 애도 낯선 도시의 낯선 학교에서 낯선 친구를 사귀는 게 부담이라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1년을 돌아보니 모두 기우였다. 애는 핵인싸급은 아니어도 인싸급으로 적응을 잘 했다. 친구가 그리 좋은지 이제 엄마아빠는 뒷전이고 친구하고만 놀 궁리를 한다. 오늘 오후에도 친구랑 놀아야한다며 두 번이나 따로 나갔다 왔다. 어떤 날은 친한 친구들이 중학교 때 같은 반이 안 되면 어떡하냐고 한참을 걱정하곤 했다. 애에 따르면 세종 친구들은 서울 친구들에 비해 더 착하고 순박하며 공부에 더 무관심하다고 한다. 여기서도 서울 친구들하고 카톡이나 게임으로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서울 친구들은 모두 밤 9시까지 학원을 다닌다며 불쌍해 한다. 

 

3. 자전거
올해 자전거를 많이 탔다. 세종은 구릉이 적고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어 자전거 타기에 딱 좋다. 세종에서 있었던 회의 대부분은 자전거 타고 다녀왔다. 내 자전거를 이용하기도 했고 세종 공공자전거인 어울링을 이용하기도 했다. 운동 삼아 타는 자전거 범위도 많이 넓어졌다. 처음에 세종시내를 조금씩 탐색하다 슬슬 금강길을 타고 공주, 청주, 대전, 부여까지 다녀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100km 가까운 거리를 달리기도 했고 대전을 거쳐 대청댐을 다녀오기도 했다. 예전에 대전 지사 직원들이 자전거 타고 대청댐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듣고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게 대단한 거리도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다. 

 

4. 독서 
올해는 의도적으로 독서를 줄였다. 노안이 와 책을 오래 보면 눈의 촛점이 맞지 않아 고통스럽기도 하거니와 책을 읽더라도 2~3일만 지나면 그 내용이 기억에서 증발하기 때문이다. 들춰보니 올해 34권의 책을 읽었다. 작년에는 41권의 책을 읽었다. 증발된 기억 속에서도 그나마 [의도하지 않은 결과],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상대성 이론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내년에는 더 적은 책을 읽지 않을까 예상된다. 노안과 기억 문제에 더해 이제 집중하며 독서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5. 건강
인생 처음으로 안경을 맞췄다. 책을 읽는데 촛점이 맞지 않아 결국 안경을 맞춘 것. 일상 생활에서는 거의 안 쓰지만 책이나 집중해서 일 할 때면 안경이 필요하다. 6월에는 자전거 낙차로 두 달간 고생했다. 다행히 갈비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실금이 갔고 완치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자전거 낙차 외에도 이런저런 염증에 시달렸는데 누구 말대로 이제 이 나이대에는 완치란 없구나를 깨달아가고 있다. 기쁜 소식은 올해 정기 건강검진에서 심혈관 나이가 42세로 나왔다는 점. 술자리 줄고 담배 안 피우고 맨날 자전거 타니 저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생각 중이다. 자전거 열심히 탔더니 몸무게가 4~5kg 가량 준 것도 대단한 성취. 

 

6. 인간
올해처럼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절망적으로 생각한 해가 또 있었나 싶기도 하다. 사실 과장, 말 뒤집기, 후안무치, 내로남불, 중상과 비방, 체리 피킹. 인간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대부분의 황당함을 올 한해 겪어봤다. 나이, 지위가 높거나 우월적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내로남불과 말 뒤집기, 아전인수, 후안무치에서 놀라운 강점을 보여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이들은 현실을 왜곡하는 데 뛰어난 재주를 보여줬다. 긍정적인 점은 감어인(鑒於人)의 맘으로 내 삶을 항상 돌아보고 돌아보는 기회를 준다는 점.

 

7. 우주 
인간에 대한 실망 탓인지 올해는 지구를 떠나 드넓은 우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상대성 이론, 블랙홀, 다중우주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등이 올해 주요 관심사였다. 무한에 가까운 우주를 알수록 더 겸손해지고 인류애가 생기더라는 석학들의 이야기와 달리 나는 우주를 알면 알수록 인간은 그저 드넓은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무가치한 존재가 아닐까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들곤 했다. 197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브 와인버그는 "우주는 이해할수록 무의미해 보인다"고 했다. 지구 역사에 등장했던 생명체의 99.9%는 이미 모두 멸종했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자면 멸종이 전형(Norm)이고 생존이 비정상에 가깝다. 

 

고생했다, 신상희.

 

2021년 12월 31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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