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은 세계적으로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안전한 나라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가 3주 내내 사회적 최고 의제라는 사실만 돌아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전란과 기아, 불경기에 허덕이는 위기 국가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2. 씨네21의 창간과 성공을 이끌었던 조선희 씨 또한 비슷한 시각을 드러낸 적이 있다. 한국인들의 생각과 달리 세계적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에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 요인이 많지 않으며 그 강도 또한 높지 않더라는 것. 한국은 인종, 종교, 분리독립, 테러, 총기, 마약과 관련한 갈등이나 범죄가 낮은 편이며, 노동운동이 세다 해도 유럽처럼 열차나 비행기까지 멈춰버리는 수준은 아니다.
3. 그런데도 한국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갈등의 강도는 높고 그 골은 깊다. 작년 전경련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갈등이 높은 곳으로 나타났으며, 더 나아가 영국 킹스칼리지가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갈등이 심한 국가 1위로 조사되기도 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남녀갈등, 세대갈등, 빈부격차가 주요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꼽힌다.
4. 갈등은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물증이자 동력이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수면 위로 떠 오르고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일상이다. 이런 갈등을 해소하며 민주주의와 사회는 조금씩 나아간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운영하기 까다롭고 비싸다. 다만, 갈등이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라는 점과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고 작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건 다른 문제다.
5. 주어진 조건에 비해 체감하는 갈등이 높은 이유로 한국의 초과밀 언론미디어 환경을 짚는 이들도 있다. 전 국민의 95%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2만3천 종의 미디어에서 생산한 각종 정보와 뉴스가 빛의 속도로 공유되고 확산하며 증폭된다. 미디어 과포화 상태에서 이용자의 관심을 받지 못한 기사는 생산되었는지도 모른 채 인터넷 지평에서 사라지며 광고료는 하락한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의 '클릭질 장사'는 어쩌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 수밖에 없으며 '클릭질 장사'의 지름길은 모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갈등의 불쏘시개' 같은 기사다.
6. 아래 기사도 그런 우려스러운 기사다. 보행교 주변이 황량한 모습인 건 주변이 아직 다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강바닥의 모래와 자갈은 강의 자연스럽고도 건강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강바닥에 모래와 자갈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세종시를 가로지르는 금강 풍경은 서울 한강변과 사뭇 다르다. 시멘트 호안으로 마감되어 잔디와 몇 그루의 조경수만 있는 한강변과 달리 세종시의 금강변은 버드나무, 갈대, 수생식물이 가득한 친환경 생태공간이다. 그래서 금강변을 산책하며 고라니, 너구리, 오소리, 두꺼비, 각종 철새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모래톱을 살짝 넘치게 흐르는 그 맑은 금강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7. 기사에서 언급한 세종시 인터넷 카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인터넷의 여론을 기사화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언론학자 강준만의 연구에 따르면, 2018년 네이버에서 댓글을 작성한 회원은 전체 회원의 0.8%에 불과했다. 6개월간 네이버 뉴스에 한 건이라도 댓글을 단 사용자는 175만여 명이었지만 1,000개 이상의 댓글을 단 아이디는 3,500여 개였다. 전체 인터넷 사용 인구 대비 1.008%에 해당하는 사람이 전체 여론에 영향을 미친 셈인데 이게 바로 댓글과 인터넷 여론 조작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이다. 공주시 의견이라며 시의원의 주장을 실었는데 그 의원의 주장에 대해 지역 언론에서 이미 반박 기사를 내기도 했다.
8. 세종보와 공주보를 다시 닫을지 어떨지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기자나 기자가 속한 언론사의 이익과 방향을 위해 괜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댓글을 보면 충청과 세종시민에 대한 비판이 가득한데 그 비판은 온전히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 하나 바로잡자면 세종보는 금강보행교에서 하류 방향 2.5km 지점에 있다. 5km 지점이 아니라.
2022년 3월 26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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