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다녀 보니 어때?"
"학교도 좋고 친구도 좋고 선생님도 좋아."
"수업은?"
"수업은 당연히 재미없지."
"선생님 좋다며?"
"선생님이 좋은 것하고 수업이 재미없는 건 다른 문제지. 가끔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게 가르칠 수 있을까 상상하다가 뇌가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지. 그냥 수업 빼놓고 나머지는 재밌어서 놀려고 다니는 거야."
"뭐가 그리 재미없는데?"
"수학은 너무 쉬워서 재미없어."
"수학 선생님 영화배우 같다고 막 좋아하지 않았냐?"
"수학 선생님 잘생겼는데 재미가 하나도 없어. 이번에 깨달았어. 차은우도 재미없으면 정떨어지겠구나. 아빠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깨달아가고 있지. 나중에 아빠 같은 남자 만나야겠다 생각하기도 해. 아, 난 연애 안 할 거야. 연애하다가 헤어지자고 하면 나 죽일 것 아냐?"
"@.@"
"영어도 재미없어. 말이 안 되는 게 애들한테 문법을 가르쳐. 주어, 서술어, 접속사, 동사, 부사, 형용사 뭐 이런 것. 아빠는 국어 시간에도 안 가르치는 이런 문법을 영어 시간에 가르치는 게 말이 된다고 봐?"
"와, 지금도 문법을 가르치는구나. 도대체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네."
"그니까. 네들이 언어를 잘 모르니까 레고 블록처럼 나눠서 이해하고 재조립해서 문장 쓰라는 건데 아니 그러려면 국어부터 그렇게 가르치든가. 국어 시간에는 그런 것 안 가르치면서 왜 익숙하지도 않은 언어 가르치면서 애들한테 형용사니 부사니 접속사니 가르치냐는 거냐고? 가르치는 영어 보면 어색해서 미치겠어. 그냥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의 영어야. 이건 영어도 아니야. 그냥 시험 보려는 영어지. 그나마 원어민 영어 시간이나 되면 좀 살 것 같더군. 마음도 귀도 정화되는 느낌 같은."
"재밌는 과목은 없어?"
"있어. 정보 과목. 가르치는 것 빨리 끝내면 내 맘대로 컴퓨터 가지고 놀 수 있거든. 저번에는 테트리스 10만 돌파해서 반에서 난리가 났지. ㅋㅋ"
"역시 겜순이의 유전자가 흐르는군. 네 엄마가 대학원 때 참 게임을 잘 했지."
"무슨 자존감 테스트 같은 것도 하던데 그것도 이상하더라고."
"왜?"
"내가 가장 점수가 높게 나왔는데 100점은 안 나오고 하나가 부족했어."
"왜?"
"질문이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다'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이더라고."
"그래서?"
"아니, 천재는 태어나는 게 맞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천재인데 나는 천재로 태어난 게 맞거든. 그래서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다'고 했더니 그러면 자존감이 낮다고 평가한다는 거야. 천재는 노력해서 이룰 수 있다고 해야 자존감이 높다고 평가하는 거야. 아빠는 이게 말이 된다고 봐?"
"타고난 천재도 있기는 하지. 파인만 같은.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여하간 난 내 자존감이 하늘의 옥황상제 똥꼬를 뚫을만큼 높기 때문에 그닥 신경쓰지는 않지만 그 질문 자체에는 불만이 많아."
"그렇군. 동아리는?"
"원래 들어가려고 했던 선도부는 2학년부터 받는대. 그래서 친구들이랑 새 동아리 만들었어."
"뭔데?"
"미디어콘텐츠부"
"뭐하는 동아리인데?"
"학교 생활 찍어서 유투브에 올릴거야. 학교에서도 신규 동아리로 승인했어."
"그렇군. 잘 해 봐라."
"오늘도 동아리 활동 하느라 집에 늦은 거야."
"무슨 활동 했는데?"
"그건 밝힐 수 없지. 모든 동아리 회원들이 오른팔을 걸고 맹세를 했거든."
"ㅋㅋ 알았다."


요즘 비슷한 나이대 지인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애들 교육 문제로 번지는데 참 답이 없다는 걸 함께 느낀다. 지인들의 직업이나 소득을 보면 다들 만만찮게 잘 사는데도 경제적으로 빠듯할 만큼 사교육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내 딸은 효녀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단 한푼도 학원이나 사교육에 쓰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 다녔던 피아노와 미술도 끊었고 이제 학원은 하나도 다니지 않는다. 대신 EBS 중학 수학 인강 하나만 듣고 있다. 14,000원짜리 교재 하나 사서 날마다 강의에 맞춰 스스로 공부하고 있다. 학원 안 다니는 대신 이것 하나만은 하자고 아빠와 약속했기 때문. 대신 나는 학원비에 해당하는 돈만큼 애 이름으로 매달 ETF에 넣어주고 있다. 애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친 10년 뒤 넘겨주려 한다. 애를 너무 방치하며 키우는가 싶기도 한데 담임 선생님과 상담에서 동의했듯이 이번 4월 중간고사가 한 분기점이 될 것 같기는 하다.

 

2022년 4월 1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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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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