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낙서장 2025. 5. 8. 22:34

단잠을 깨우는 아침 전화는 언제나 불길하다. 부고다. 부고는 이제 이메일로 카톡으로 문자로 그리고 가끔 전화로 온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의 수많은 부고가 이메일로 카톡으로 문자로 전해져 오는 시대에 전화로 부고가 왔다면 그건 관계가 가깝고 교류가 많았던 이가 돌아가셨다는 의미다. 


아내와 함께 찾은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여러 친척을 만났다. 어떤 분은 몇 년 만에, 어떤 가족은 십수 년 만에, 또 어떤 친척은 우리 결혼식 이후 처음 뵀다. 장례식장에 머문 몇십 분 동안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짧고 굵게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다. 얼굴 안 보고 지낸 지가 참 오래됐지만 친척 간의 중요 소식들은 대부분 공유하는 점이 신기했다. 나이 든 어르신들끼리 이래저래 소식과 안부를 전하고 지내셨던 모양이다. 


이제 죽음과 병과 나이듦에 대해 더 뼈저리게 느낀다. 내 신혼 때 대기업 부장을 하며 거의 매일 조기축구에 빠져 사셨던 분이 암 수술을 받고 거동이 불편하다. 대학 교수까지 하셨던 분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계시다고 하고, 또 어떤 분은 무슨 병에 걸리셔 장례식장에 못 오셨다고 한다. 그 건강하고 훤칠했던 분들이 병마에 시달린다는 소식이 조금은 충격적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나보다 적게는 열 살, 많게는 스무 살쯤 많은 분들이니 그럴만도 하겠구나 싶다. 기억이 마지막 만났을 때 즈음에 멈춰있었을 뿐이다. 그분들의 소식을 접하며 나나 아내나 우리의 미래도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조용히 이야기했다. 우리도 늙고 병들고 아프다가 죽음을 맞이할 게다.


좀 먼 친척이나 지인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분들은 살아계시는지 돌아가셨는지 어떤지 모르는 삶과 죽음의 중첩 상태다. 부고라도 오면 그분들의 생사를 알겠지만 아무 소식이 없으면 내가 그분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그 무엇도 확정할 수 없다. 돌아가셨는데 부고가 안 왔는지 아니면 살아계시기에 부고가 안 왔는지 내가 알 길이 없다. 


고인은 조의금을 일절 받지 말고 부고도 가까운 친척에게만 알리고 장례식도 조촐하게 치르라고 유언하셨다고 한다. 조의금 받으면 자식이든 손주든 또 갚아야 하는 빚이니 받지 말라고 하셨단다. 아흔 넘게 주변에는 조의금 축의금 다 내시던 분이 이런 유언을 남기셨다. 장례도 자식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 이미 상조회사를 통해 충분히 준비해 놓으셨단다. 자식이든 주변이든 그 누구에게 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가고자 하시더니 그 마지막 소원을 이루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25년 5월 6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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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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