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달 묘사 때 선영에 오셔서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고 하셨던 문중 어르신이 돌아가셨다. 한 달을 못 넘기셨다. 노환이 심하셨는데 조상님께 인사드리러 어렵게 오셨던 듯하다.
2. 장례식장에 오신 고향과 문중 어르신들께 난 아직도 아무개 둘째 아들이다. 그 많은 이름을 어찌 기억하시겠는가? 그래도 내가 누군지 인사드리니 다들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덕담을 건네주신다. 나중에 나도 저 나이가 됐을 때 누군가가 아무개 아들입니다 딸입니다 하며 인사하면 기특할 것 같다. 사실 내 친구 자식들 이름 다 기억 못 한다.
3. 연로하신 고향 어르신들을 뵈며 어쩌면 몇 분은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겠다 싶었다. 슬프게도 그랬다. 말씀을 나누다보니 잊혀진 옛 이름과 기억이 아득하게 되살아난다. 40여년 전의 분절되고 절단된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르신들은 그런 에피소드와 사람을 연결해 기억하고 계시다.
4. 아침에 광주공항에 내려 대중교통으로 장례식장을 찾아가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인터넷의 도움을 받고서야 찾아갈 수 있었다. 왜 나는 광주에 대해서는 이런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광주 출신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던 듯한데 생각해보니 내가 광주에서 산 기간이라는 게 고작 8년 남짓이었다. 그나마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광주를 떠난 지가 벌써 29년째다. 88번 타면 터미널이고 고등학교고 집이고 가던 시대가 아닌데 아직도 그런 본능이 깊이 남아 있었던 셈. 이번에 광주 시내버스를 타보니 버스 번호 앞에 종점이름이 붙어 있었다.
5. 이틀 연속 상황이 옛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다. 어제 늦은 밤 에버랜드에서 애를 목마 태우고 불꽃놀이를 구경했는데 그때 대구 살 적 아버지가 문득 떠올랐다. 어린 시절 팔공산에 갔을 때 내가 다리 아프다고 투정부리니 아버지는 나를 목마 태우고 내려오셨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많은 기억이 남아있지 않지만 이런 인상적인 기억은 생생하다. 아버지가 어떤 심정이셨을지 약간은 이해가 된다. 사람은 기억을 통해 존재가 규정된다. 그 기억이 환상의 동의어라 할지라도...
2018년 5월 2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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