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대구였다.
대구는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 가득한 곳 중 하나다. 할머니 손 잡고 걸었던 안지랭이길, 할 일 없으면 놀러 갔던 앞산공원, 둥둥 떠다니는 깡통에 돌 던지며 놀았던 수성못, 에스컬레이터 타려 쇼핑도 안 하면서 오르내렸던 대백, 다리 아프다고 투정부리니 그 엄하던 아버지가 목마 태워주시던 팔공산, 멱감고 놀았던 낙동강. 대구 떠나는 날 친구 붙잡고 펑펑 울었던 기억까지.
가족이 대구 떠나고 다시 간 건 20년도 넘어 어머니 회갑 때였다. 그리고 15~16년이 흘러 오늘 대구에 다녀왔다. 차창 밖으로 그 시절의 여러 기억이 엉켜 올라왔다.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기억이며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생활하시다 돌아가셨던 기억이며 그 뒤의 힘겨웠던 삶들 하며. 그 동안 대구에 여러 일이 있어도 가지 않았던 이유가 꼭 바빴던 탓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1년 전 둘이서 산책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는 어린 마음에 왜 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하시나 좀 의아했었다. 고생해서 집을 샀던 이야기며 옳지 않은 일이 있으면 따지라는 말씀이며. 돌아보면 아버지는 그때 이미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계셨고 그건 일종의 유언이셨다. 병원비로 집이고 다른 재산이고 허공 속의 재처럼 다 사라졌지만 다행히 아버지와의 기억은 잘 남아 있다. 다만, 다음에 대구에 일이 있을 때 오늘처럼 잘 갈 수 있을 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봉인된 아픈 기억을 꺼내고 싶지 않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2019년 3월 23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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