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표현을 빌자면, '진리'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선택된 진리다. 이 책은 공적인 경로로나 비공식적 경로로나 일반 대중이 과학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통념을 다루고 있다. 푸코의 지적처럼 이런 통념은 한 분야의 권위자가 다른 분야에 관해 한 말로 대중에게 널리 퍼져나간다. 

 

'중세는 과학 발전의 암흑시대였다', '콜럼버스 이전 시대 지식인들은 지구는 평평하고 저 먼바다로 나아가면 배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믿었다', '갈릴레오는 피사의 사탑 실험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을 공개 반박했다',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가 미국 과학 교육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대표적 과학적 오해들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유명한 역사적 오해를 포함하여, 과학과 종교의 관계, 과학의 선구자,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에 관한 잘못된 통념을 살펴보고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 

 

과학사에서 종교는 사실 이상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시각이다.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가 과학의 공백기라는 통념은 서구 혁명 서사구조와 나란하다. 근대의 과학/사상 혁명은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했고, 그 와중에 중세시대가 필요 이상으로 평가절하되었다. 실제 중세시대 과학은 1,000년 이상 나름의 성취를 이뤄냈으며, 종교기관은 과학의 물질적, 제도적 후원자였다.

 

과학의 선구자에 관한 오해도 비슷하다. 근대 과학혁명을 지나며 신의 역할은 제거되었고, 신성함에 부여했던 문화적 의미와 기능을 과학 천재가 이어받았을 뿐이다. 이제 관광객들은 종교성지라도 되는 것처럼 울스도프(뉴튼의 고향)로 몰려들어 썩어가는 사과나무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고,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대학교 예배당 전실에 있는 뉴턴 조각상 앞에서 존경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과학 발견은 한 명의 과학 천재가 '유레카'를 외침으로써 일어나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과학적 발견과 발명 또한 시대적 배경과 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이며, 그 주변에는 완벽한 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노력했던 헌신적 사람들의 협력과 도전이 언제나 함께 했다.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기준이 되며, 과학자들이 언제나 따른다고 믿는 '과학적 방법론' 또한 실체가 모호한 '통념'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과학적 방법론'이란 다양한 과학의 방법론을 아우르기 위한 일종의 상징적 단어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언급되는 과학적 방법론의 의미를 들춰보면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난잡함과 변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가끔은 '합의된 허구' 정도가 진리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을수록 경계는 흐려지며 실체는 모호해진다.

 

2020년 4월 23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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