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탄핵정국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통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사례다. 전문가들은 이 정치적 대격변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쏟아냈다. 대격변 뒤에는 그에 걸맞은 뚜렷하고 분명한 원인이 있기 마련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반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정운호 나비효과'라는 게 등장했는데 이는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정운호의 원정도박이 결국 박근혜의 탄핵으로 이어졌다는 시간적 인과관계를 정리한 내용이었다.(https://www.fmkorea.com/989437964 참고) 많은 이들이 '정운호 나비효과' 관련 그림이나 글을 읽으며 웃고 즐기기는 했지만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하나의 인터넷 유머 정도로 치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책 '우발과 패턴'에 따르면 어쩌면 '정운호 나비효과'가 진실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핵심은 격변에 대한 설명이다. 복잡계와 비평형 물리학의 눈으로 복잡한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고 그 뒤의 단순한 규칙을 읽어낸다. 복잡계란 완전한 질서나 완전한 무질서를 보이지 않고 그 '혼돈의 가장자리'에 있는 시스템이다. 복잡계에서는 수많은 구성 요소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구성 요소 하나하나의 특성과는 다른 새로운 현상과 질서가 나타난다. 많은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생활하는 인간 사회도 대표적 복잡계다. 저자는 지진, 산불, 멸종 같은 자연과학을 넘어 주식, 경제, 과학혁명, 역사, 전염병의 확산, 도시의 성장, 패션의 유행 등에서까지 복잡계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패턴을 찾아내려 한다.

복잡계 이론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시스템은 구성 요소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특정한 임계값에 도달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복잡계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자기조직화하는 임계성'이다. 복잡계 물리학에 따르면 임계 상태에서의 작은 변화가 시스템 전체를 요동시킬 수 있고, 임계값을 전후하여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상전이 현상이 나타난다. 즉, 시스템이 임계 상태에 있다면 아주 작은 힘이나 사건조차 예상치 못한 거대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지진, 멸종, 산불, 세계대전 등이 모두 임계 상태에서 작은 사건이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달은 사례들이다. 산불은 자신이 얼마나 큰 산불이 될지 모르며, 전쟁 또한 얼마나 큰 전쟁으로 번질지 아무도 모른다. 초대형 지진 또한 그 시작은 작은 지진과 마찬가지로 임계 상태의 단층에 작은 바위나 돌덩이가 떨어지며 시작한다. 지구 탄생 후 있었던 5번의 대멸종 또한 유성이나 혜성 충돌에 따른 게 아니라 생태계 내부 작은 멸종이 파괴적인 대멸종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2015년의 정운호 사건은 산에 떨어진 번개나 담배꽁초, 한 발의 총성, 혹은 단층에 떨어진 작은 바위에 불과했을 지 모를 있다. 아무도 정운호 사건이 어떤 후과를 일으킬지 몰랐다. 다만, 2016년 당시 한국 사회는 임계 상태에 있었고 평소 같으면 별 것 아니었던 사건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이는 다시 연쇄 작용을 일으키며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변화는 느릿느릿 오는 게 아니다. 스스로 임계 상태에 이를 수 있는 세상에는 언제든 혁명이 닥쳐올 수 있다. 다시 말해 나의 작은 결정과 행동이 이 세상의 대규모 변화를 일으키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책에 이어 성균관대학교 김범준 교수의 ‘세상 물정의 물리학’과 ‘관계의 과학’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우발과 패턴’에서 언급된 복잡계와 비평형 통계물리학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우발과 패턴 - 복잡한 세상을 읽는 단순한 규칙의 발견, 마크 뷰캐넌(지은이),김희봉(옮긴이)

시공사 2014-08-20 원제 : Ubiquity (2000년)

 

2020년 4월 27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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