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어 본 와인 입문서 중 최고의 책이다.

나는 술을 좋아하고 즐긴다. 맥주, 소주, 막걸리, 위스키, 보드카, 고량주, 와인 같은 여러 술을 즐겨봤지만, 개인적으로 편하고 좋은 술은 맥주였고 어렵고 불편한 술은 와인이었다. 난 술 자체도 좋아하지만, 술자리의 즐거운 분위기와 서로 간의 교감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난 맥주가 좋다. 도수가 높지 않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많고 가격도 부담 없다. 무엇보다 술을 가운데 두고 지켜야 할 예법이나 지식 따위가 없다. 한마디로 맥주가 술자리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와인은 여러 불편한 기억으로 다가온다. 따개가 없어 난감했던 기억, 대기업에서 와인 교육을 받은 친구랑 한잔하다가 예법에 어긋난다고 지적받았던 기억, 와인잔의 보울이 아니라 스템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 무슨 지적, 무슨 지적 등등. 여기에 더해 각종 와인 지식이 술자리의 주인공이 된다. 와인의 종류가 어떻고 원산지가 어떻고 포도가 어떻고 산소와 접촉한 산도가 어떻고 하는 이런 주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가끔 와인 마시는 사람들은 천재가 아니면 편집증 환자가 아닐까 상상하기도 한다. 또 그런 모임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을 보며 우울해지기도 했다. 뭐 와인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지적 허영에 빠진 사람들일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보통 자신의 본 모습을 내세울 게 없을 때 대리할 물질을 내세우기 마련이니까. 고백컨데 국내에서 마셔봤던 와인의 맛은 그냥 시금털털한 포도맛 나는 술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와인에 여러 화려한 수사를 늘어놓는 사람들을 보며 플라시보 효과가 사람을 마비시키기는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나도 와인의 풍미를 제대로 느낀 적이 있다. 내 생애 최고의 와인은 2013년 겨울 남미 대륙의 최남단 칠레 푼타 아레나스에서 즐겼던 팩와인이다. 푼타 아레나스의 대형 마트에서는 칠레 와인과 아르헨티나 와인을 한 팩당 대략 1천 원에서 2천 원가량에 팔았다. 대형 마트에서 여러 팩을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 지인과 함께 호텔 방에서 머그컵으로 즐겼던 그 와인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반바지에 늘어진 티셔츠 하나 걸치고 별 시답지도 않은 이야기하며 부담 없이 즐기는 그 술맛을 누가 잊겠는가?

이 책 5분 와인은 와인이 어렵고 불편한 술이 아님을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책이다. 대표저자 정휘웅은 특유의 구어체 문장으로 와인과 관련한 여러 통설을 바로잡고 와인이 어렵고 불편한 술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와인 또한 최소한의 예의만 지킨다면 누구나 쉽고 즐겁게 함께 즐길 수 있는 술이라는 이야기다. 와인에 관한 기본적인 상식, 상황별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절, 실용적인 와인 정보 등이 주요 내용이다. 5분이면 읽을 수 있는 여러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책을 읽고 나면 와인 한 잔 친구와 즐기며 아는체 할 수 있는 소중한(!) 지식도 습득할 수 있다. 저자들은 책의 모든 수익을 미래의 소물리에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부엌 서랍을 열어보니 T자형 오프너, 소믈리에 나이프, 양쪽 지렛대 오프너가 다 있고 드랍스탑도 있다. 찬장에는 와인잔도 있다. 이제 와인 책까지 읽었으니 남은 건 와인 한 잔 즐기는 일인 것 같다. 역시 와인은 '로마네 콩티'다. 아, 와인 입문서로는 사실 이 책이 처음이다.

 

5분 와인 - 웅가가 알려주는   
정휘웅,정하봉,홍수경(지은이) 제이앤제이제이 2019

 

2020년 5월 14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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