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데리고 출장 다니는 것때문에 내가 장관(?)을 못 할까봐 걱정하시는 분이 이리 많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몇몇 분은 애 스펙 쌓아주려고 학회나 컨퍼런스에 데리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묻기도 하셨다. 주변 교수들 중에 중고생 자식들 데리고 학회에 가서 노벨상 받은 사람이나 유명 교수한테 싸인 받고 사진 찍어서 그걸로 스토리를 만들기도 한다면서 말이다.

 

우리집은 주말 가족이다. 공공기업 지방 이전으로 아내는 지방에서 근무한다. 아내는 월요일 새벽 5시 반에 집을 떠나 금요일 늦은 밤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긴 이야기를 짧게 쓰자면 주중 육아의 많은 책임은 내게 있다. 며칠씩 한국을 떠나 출장 갈 때 애 볼 사람이 없어 그냥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 내게는 그만한 돈이 있고 이런 경험이 애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애를 데리고 다닌다.

 

맞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미 나는 가진 자이고 내 딸은 자연스레 그 혜택을 받고 있다. 국제학회나 컨퍼런스에 딸과 함께 자주 다녀 어지간한 교수들은 내 딸을 잘 안다. 가끔 교수들이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애가 만약 공간정보를 전공한다면 자기가 기꺼이 받아주겠다고.

 

나는 이 대목에서 '공정함'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게 말이다. 출발선이 다를 때 공정함은 과연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 것일까?

 

2019년 10월 16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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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 2019.12.30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정함이라는 게 가능할까요? 적어도 우리가 공간과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면, 그리고 모두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날 수 있는 거 아니라면 불가능한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저는 들어요. 모두에게 특정한 환경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무슨 실험실이 아닌 이상 각각의 환경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공정한 사회같은 유토피아적, 목표지향적인 말보다 기만과 모멸을 배척하는 사회. 쪽이 더 구체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가 빌딩이라면 기만은 계단을 믿고 밟았는데 무너지는 상황일 거고, 모멸은 계단이 없는 상황이겠죠. 아무리 엘리베이터가 좋아도 화재가 나면 계단을 통해야 되긴 한데, 화재를 안 겪어본 사람한텐 그게 실감이 안 나고.. 엘리베이터 너무 편하고.. 나 사는 덴 일단 안 날 것 같고... 앞으로도 (내 자식들한테도) 안 나면 좋겠고... 그니까 불씨는 그냥 밑으로 던지고

    최근 출생율을 보면 빌딩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네요. 화재에 무뎌지지 말아야하는데..

    • Favicon of https://endofcap.tistory.com BlogIcon 뚜와띠엔 2019.12.31 15: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의견에 감사 드립니다. 다만, 공정한 사회라는 게 유토피아적인 발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류가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던 가치이고 이 방향으로 느리지만 발전해 왔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