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48년 인도네시아 바타비아 재판 기록.

 

영국의 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은 히틀러가 홀로코스트를 명령했다는 공식 문서를 찾지 못하는 한 히틀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신은 반유대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다. 이에 명예훼손 재판에서 변호사가 물었다. "당신이 인종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직접적인 문서상의 증거가 있습니까?"

 

 

 

2. "하나도 놀랄 것 없이 종전 직후 유럽에서 홀로코스트는 서서히 잊혀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는 잊혀진 기억 중 하나였다. 홀로코스트가 재조명을 받은 건 빨라야 60년대부터이며 생존자의 증언과 기억을 되살리려는 역사가들의 활동에 기댄 바 크다. 신생국 이스라엘에게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의 찬란한 역사에 오점이었고, 나치의 탄압에 그저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한 유대인은 부끄러운 존재에 다름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전후에 홀로코스트가 널리 알려지는 것을 불편해 했으며 심지어 그런 활동에 제동을 걸기까지 했다.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한 시오니스트들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이스라엘로 이주한 유럽 출신 유대인을 '비누'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죽여 비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본다면 잔인하다 못해 패륜에 가까운 호칭이었다. 어째 어느 나라에서 '위안부' 피해자가 '매춘부'로 불리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이제 홀로코스트는 전 세계사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지만 그런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9년 9월 23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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