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으로 배달된 선거공보를 살펴봤다. 내 세금으로 일할 종업원 뽑는 것이니 지원서 하나하나 잘 살펴야 하는 건 고용주로서 의무다.

2. 여당 현역 의원은 정치 이슈보다는 지역구 맞춤형 사업을 공약하고 있고, 강력한 야당 후보자는 경제문제, 남북문제, 그리고 조국 사건을 이슈로 내걸고 있다. 야당 후보자가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원칙과 공약들이 현 정부의 정책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안티테제 이상의 구체성이 잘 안 잡힌다는 이야기.

3. 정책으로만 보자면 정의당과 민중당이 인상적이다. 특히, 정의당의 '한국형 그린뉴딜'은 잘 실천하면 경제와 환경을 함께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저소득층 노후주택을 그린리모델링하는 정책 같은 것은 복지와 경제, 환경을 함께 고려한 공약으로 보인다. 민중당은 선명성이 인상적이다, 조금 더 나가도 될 것 같은데 약간 머뭇거린 느낌이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자. 인물로만 보자면 열린민주당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래저래 화제의 인물들이 어벤져스처럼 팀을 이뤄서 그런 것 같다. 전문성도 뒷받침되니 이런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4.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한국경제가 쉽게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경제 문제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위기이고, 한국은 이 체제에 깊숙이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다. 혼자만 따로 뭔가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경제성장률이라는 숫자 장난을 친다면 마치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눈속임을 할 수 있다. 미국 경제가 얼마 전까지 전후 최장 확대기를 보냈지만, 미국 노동자의 절반가량은 연 3만 달러 이하의 연봉으로 생활한다. 이 말은 미국 경제성장의 대부분의 과실을 극소수가 가져갔다는 말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5. 자본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남미로 더 싼 임금과 낮은 규제를 찾아 이미 이동했거나 지금도 이동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고용을 확대하고 이중 노동구조를 안착화시키고 있다. 더불어, 기계와 AI는 더욱더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몰아내고 있다.

6.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급속히 사라져가고 고용 안정성은 위협받고 있다. 솔직히 자문해 보자. 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하신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자리는 상시적 불안정성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공무원과 공공기업에 목매다는 이유가 다 있다.

7. 양질의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교육 투자와 기간은 길어져만 간다. 전 세계적으로 교육비는 치솟고 있고 미국 같은 경우 대졸자 1인당 평균 10만 달러의 빚을 지고 대학문을 나서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양질의 일자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주택은 어떤가? 주택은 이제 투자를 위한 하나의 파생상품이 되어버렸고 그 결과로 주택 가격과 임대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를 뿐이다.

8. 스타트업이 희망인냥 이야기하지만 그건 그냥 언발에 오줌누기고 뭐라도 하는 시늉일 뿐이다. 이 시국에 수수료를 올린 배달의 민족이 얼마나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었을까? 타다는? 아니면, 우버는 어떤가? 긱 경제라 불리는 임시직 일자리만 낳지 않았나? 자본과 엘리트들의 칭송을 받지만 이들의 비즈니스모델은 단순하다. 위험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다. 스타트업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지원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시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효과마저 발휘한다.

9. 저녁을 먹는데 장모님이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으시겠다고 하신다. 평생 민주당과는 담을 쌓고 살아오셨고 또 집에서도 항상 정규재TV니 가로세로연구소니 하는 유튜브를 즐겨 보시는 분이라 적잖이 놀랐다. 장모님께서는 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보시면서 민주당을 찍기로 하셨다고 한다.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을 보니 한국이 잘 대처한 것 같고 이런 공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주변 노인들한테도 같은 논리로 민주당을 찍으라고 권하신다고 하신다.

10. 민주당은 운이 좋다. 이번 총선에서 아마 승리를 거두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 승리가 코로나와 능력 없는 야당 덕분임을 잊는다면 그다음 수순은 처절한 패배로 귀결될 뿐이다.

11. 민주당 지지자들의 현실 인식과 달리 지금 상황은 정말 심각하다. 부동산은 폭등해 내 집 마련의 꿈은 저 먼 안드로메다에나 있으며, 양질의 일자리는 이제 사라지다 못해 증발해 가고 있고, 가게를 내거나 창업해 봤자 곧 폐업 수순이다.

12. 소위 문빠들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국뽕 치사량까지 마시며 써대는 글을 보다 보면 지난 미국 대선 때 미셸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며 했던 연설이 떠오른다. 미셸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 후보에 맞서 '이미 미국은 위대하다'라는 명(?)연설을 남겼는데 그 연설이 미국 민중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뚜렷했다. '우리 민주당은 당신들의 고통에 관심이 없어요. 이미 미국은 위대하니까요.' 고통에 빠진 민중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변화에 나서 소득을 더 올려주려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표를 주기 마련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가하게 공치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

13. 선거 공보를 보며 아쉬웠던 건 지금의 위기가 세계적 위기이고 체제 위기로 보이는데 그 원인과 해법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물이나 정당이 없어 보이더라는 점이었다. 지금의 위기를 보자니 퇴행적 인물이나 아니면 혁명이 다시 세계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할 것 같은데도 말이다. 문제는 다시 불평등이다. r>g! 알지?

2020년 4월 6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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