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국가보안법은 폐지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자구 하나 손대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대로 살아 있다. 당시 민주노동당과 연대해 과반 의석수를 확보했던 열린우리당 강경파들은 지금이야말로 국보법을 폐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냥 그리고 국보법 폐지만이 정의인냥 행동했지만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국보법 개정에 합의한 상태였다. 국보법에서 가장 독소조항으로 꼽혔던 7조(찬양고무, 이적단체 구성 및 가입, 이적표현물 제작배포)와 10조(불고지죄) 삭제에 합의했던 것. 두 조항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는 자유주의 기본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유엔인권위원회나 미국 국무부로부터 항상 개정을 권고받았던 독소조항이었다. 국보법 피해자의 상징과도 같았던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선생마저도 국보법 완전 폐지가 아니라 최소한 7조만 삭제해도 좋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의안은 번번이 열린우리당 강경파에 의해 부결되었으며 서준식 선생은 변절자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지리한 논쟁과 소동 끝에 국보법 개정, 폐지는 물건너 가버렸고, 여야 지도부가 합의하고도 국보법 7조 하나 없애지 못한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참으로 깊고도 길게 지금까지 남아있다. 국보법 피해자의 90% 이상은 7조와 10조 위반자였고 국보법의 나머지 조항은 형법이나 다른 법률에도 이미 있는 것들이라 남겨둬도 딱히 문제될 것도 없던 터였는데 그저 완전 폐지만이 정의인냥 행동하던 강경파들이 판을 엎고 말았던 것.
민주주의의 각종 법률과 제도는 타협의 산물이다. 완벽한 제도도 완벽한 만족도 불가능하다. 모두가 만족할 수 없지만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그 타협의 불완전함을 개선해나가는 게 속터지게 느리고 돈 많이 드는 우리 민주주의다. 완승과 완벽을 기대하려거든 권위주의체제나 독재국가에 사는 편이 더 나을 게다. 소위 '검수완박' 논쟁을 보며 옛 기억이 데자뷔처럼 떠올라 몇 자 적어 봤다.
2022년 4월 23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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