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8주기

낙서장 2022. 4. 17. 21:44

1. 8년 전 오늘을 어찌 잊을까? 긴 여행을 마치고 케임브리지 집에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그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새벽 4시쯤 깨어 휴대전화로 한국 포털을 접속했다. 진도 부근에서 수학여행 학생을 실은 페리호가 침몰 중이라는 속보가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걱정스러웠지만 한국은 밝은 대낮이고 진도 부근은 내해에 가까워 구조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좀 있다 승객 전원 구조라는 또 다른 속보가 올라왔고 난 안심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더랬다. 


2. 피곤한 몸을 깨운 늦은 아침에서야 난 나의 인식이 한국의 대통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날 이후 거의 1주일 동안 영국 비비씨의 첫 소식은 세월호였고, 1년이 지난 2015년 4월 16일 영국 비비씨의 시작도 세월호였다. 2015년 비비씨 뉴스는 당시 실종자였던 조은화 학생 부모님과 인터뷰로 시작했다. 영어로 자막이 깔리며 우리말로 "근데요. 정말 아픕니다."라는 인터뷰가 나오는데 눈물이 나 끝까지 볼 수가 없어 TV를 끄고 말았다. 


3.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2주 전 영국에서는 힐스버로 참사 관련 재판이 25년 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많은 한국인에게 훌리건 난동으로 기억되고 있는 힐스버로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 간의 FA컵 준결승 경기 도중 관중 96명이 숨지고 766명이 부상당한 영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다. 나도 예전에 뉴스를 접하며 유럽은 훌리건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고다. 


4. 힐스버로 재판이 다시 시작된 이유는 유가족들의 요청으로 2009년 발족한 세 번째 진상조사위원회가 다음과 같은 진상보고서를 2012년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어떤 리버풀팬도 힐스버로 참사에 책임이 없으며, 이 사태의 원인은 전적으로 경찰의 통제 부재에 있다. 또한, 사망자 96명 중 최소한 41명은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았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경찰이 적절한 대응을 했다면 몇 명을 구할 수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함으로써 정부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5. 세월호 2주기만에 박근혜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150억원가량이 들었고 앞으로도 대략 50억원이 더 들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예산을 아끼고 싶다면 빨리 그리고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는 게 지름길이다. 언제까지 하면 될까? 유가족이 만족할 때까지 하면 된다. 영국 정부가 미적거리다 힐스버로 참사 세 번째 조사에만 3,300억 원을 썼다. 시간은 언제나 복리다. 


6. 잊지 말자. 선진국의 안전수준이나 사회정의가 대단하다면 그건 그들이 부단하게 투쟁해서 얻은 것이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2022년 4월 16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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