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랑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 3시간 반가량 이야기했다. 서로에게 섭섭한 점 등을 이야기하며 오해를 풀고 바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이야기가 점점 우주, 진로, 친구 관계 등으로 번졌다. 


딸은 아빠가 약속과 달리 자기보다 더 조급한 것 같다며 그게 상당한 압박이라고 토로했다. 더불어, 꼭 게임을 그만두려고 할 때 게임 가지고 뭐라고 하며 옷을 개려고 맘 먹으면 옷 개라고 하고 시험공부 계획 세우려고 하면 시험 준비하라고 한다며 그럴 때마다 하고 싶던 의욕이 팍팍 사라진다고 불평했다. 


난 나도 초보 아빠다 보니 어떨 때면 다 풀어주고 싶다가도 이러다 애 잘못되는 게 아닌가 싶어 뭐라고 하게 되고 그러면서 오락가락하기도 한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게임 시간 관련해서도 만약 애 이야기처럼 원래 약속한 시간보다 덜 게임했는데도 내가 뭐라고 했다면 내 실수이며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딸과 아빠가 같은 유전자로 묶여 있어 알 수 없는 통로로 서로의 생각이 전달되기에 애가 뭔 행동을 하기 직전에 바로 아빠가 나서는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딸도 상당히 공감했는데 전혀 말도 안 되는 논리는 아니었던 모양. 


우주는 왜 이리 크고 무한에 가까운가? 몇억 년 전 번성했던 내계인의 유적이나 사체가 석유의 근원이 아닐까? 생명공학을 이용해 티렉스를 복원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작은보호탑해파리는 성장했다가 다시 어린 세포로 돌아가서 사실상 불로영생하는데 이 원리를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는가? 곰벌레의 유전자를 인간에게 이식하면 안 되는가? 생명윤리는 과학의 발전에 방해만 되는 것은 아닌가?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애의 진로로 주제가 바뀌었다. 직업으로 증권 트레이더는 어떤지? 왜 물리학이나 천문학 전공한 수학 잘하던 과학자가 증권회사로 가게 되었는지? 왜 아빠는 의대는 생각도 안 했는지? 공대에는 무슨 과가 있고 전망이 어떤지? 생물학은 어떤 분야가 있는지? 


애는 원래 천체물리학 정도만 재밌겠다 싶었는데 요즘은 컴퓨터나 생물학과 해양 쪽이 꽤 신기하고 재밌겠다 싶다고 한다. 생물학은 바이러스나 백신 등을 연구할 수 있을 것 같고, 바다는 화성보다 더 연구가 안 된 분야라 새롭게 연구할 게 많아서 재밌을 것 같다고. 바다 쪽에서는 해양뿐만이 아니라 갯벌생태계가 너무 흥미로운데 뭘 공부해야 할지 몰라 걱정이 되기도 한단다. 아는 범위에서 설명해 주고 또 이야기 들어 주고 그랬다.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이렇게 선택장애 상태로 있으면 어떡하냐며 고민하기에 차라리 이렇게 꿈이 많은 게 좋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의 꿈은 뭐냐고도 물어봤다. 꿈 많은 애는 자기뿐이며 대부분은 그냥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고 한다. 부모가 시켜서 학원에 다닐 뿐이고. 


이래저래 생각해 봤는데 여러 꿈 중에서 그래도 자기는 적성이 딱 과학자 같다며 아빠는 자기가 뭐가 됐으면 좋겠냐고 물어본다. 과학자 하면 맨날 SCI 논문 써야 하고, 실적 쌓느라 일 많이 하느라 힘드니 잘하는 작곡 공부나 더 열심히 해서 K-POP 작곡가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범준처럼 좋은 곡 많이 뽑아 놓으면 평생 연금 타듯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애는 공부는 안 하다가도 맘잡고 하면 쭉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작곡은 그런 확신이 안 든다고 한다. 노력한 만큼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지는 않더라는 것. 요즘은 작곡한 곡을 엄마아빠에게도 잘 들려주지 않는데 이유를 들어 보니 알게 모르게 자주 듣는 음악의 비트, 멜로디가 자기 곡에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그렇다고. 이 대목에서 신경숙 작가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애도 작곡에 자신이 서면 한림예고 실용음악과에 가 볼까 생각 중이었단다. 작곡학원은 여전히 다닐 생각이 없으며, 유튜를 보며 음악 공부 중이라고. 며칠 뒤가 생일인데 생일 선물로 Launchpad 사 주기로 했다. 


애와 긴 대화를 마치며 엄마아빠가 조금 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곁에서 보면 맨날 놀기만 하고 이런저런 활동에 넋이 빠져있는 것 같아도 나름 자신의 인생과 진로뿐만 아니라 우주와 사회, 친구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일 일찍 학교 가야 해서 적당히 대화를 끊으려 했더니 학교보다 더 중요한 게 이런 대화라며 근 3시간 반을 아빠 붙잡고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 다 한 딸아이가 고맙기만 하다. 딸이랑 이야기하면 항상 내가 지는 느낌인데 왜 자랑스럽기만 할까?

 

2022년 6월 6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