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에 한 번씩 수백 권의 책을 버리곤 하는데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책 중 하나다. 유나바머를 둘러싼 이야기와 그의 선언문을 담았다. 1996년에 사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버리지 않은 걸 보니 책 내용이 강렬하기는 강렬했던 모양.
소포 폭탄 테러리스트로 유명한 유나바머, 테어도르 존 칸진스키가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다. 산업사회와 현대기술에 비판적이었던 유나바머는1978년부터 1995년까지 사제 폭탄을 항공사나 대학교에 소포로 보내 3명을 살해하고 23명에게 상해를 입혔다. FBI의 긴 수사 끝에 친동생의 신고로 1996년에 체포되어 연방교도소에서 종신형을 살던 중 사망한 것. 암에 걸렸다고 얼마 전 스스로 밝혔는데 이번 죽음이 자살인지 자연사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
이 책의 핵심은 '유나바머 선언: 산업 사회와 그 미래'다. 내용이 명문이다. 용서할 수 없는 그의 행동과 별개로 이 글은 일독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산업혁명과 기술발전이 부의 증가와 수명연장을 인류에게 가져다줬지만, 그 반대급부로 이제 사회는 더 불안정해졌고 삶은 무의미하고 비천해졌으며 심리적 고통은 더 심해지고 자연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다고 그는 짚고 있다.
이 책에는 유나바머가 테러 대상자인 데이비드 겔런터 박사에게 보낸 편지도 실려 있다. 예일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겔런터 박사는 1993년에 유나바머의 소포 폭탄을 받고 오른손과 오른쪽 눈을 잃었다. 겔런터 교수는 디지털트윈과 메타버스의 시원이 되는 '미러월드' 개념을 제시한 인물이다. 어찌 보면 1993년에 유나바머는 이미 디지털트윈과 메타버스의 유행을 내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16살에 하버드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하고 24살에 UC 버클리 수학과 교수가 되었던 한 수학 천재의 삶이 이렇게 마감됐다.
2023년 6월 13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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