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그냥 추운밤에 소주 한 잔 마시며 생각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끄적거려 봄.


1. 예전에는 인터넷 속도 한국이 빠르다고 그거 하나로 IT 선진국이라고 자위하며 살았는데, 여기도 이제 어지간한 곳 다 광케이블 깔려서 대부분 한국만큼 속도 나옴. 물론 가격은 약간 더 비싸기는 하지만 요즘 통신업체들 번들 정책 잘 골라 계약하면 한국과 그닥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함.


2. 한국이 예전에 물건 배송 속도 빠르고 서비스 속도 빠르다고 했는데 여기도 민간 기업의 서비스 속도는 요즘 만만치 않음. 버진 미디어 같은 경우 인터넷 신청하면 4시간 이내 개통을 목표로 모객을 할 정도고, 영국 아마존에서 뭘 구매해도 그렇게 늦게 오지 않음. 물론 공공 서비스 속도는 아직도 열라 느리지만...


3. 은행 서비스는 한국보다 훨씬 나음. 대부분의 한국 은행은 오전 9시에 열어서 오후 4시에 닫고 주말에는 열지 않지만, 여기 은행들은 자율적으로 영업 시간을 정해서 영업함. 평일에는 보통 9시에 열어서 오후 5시에 닫음. 중심가 은행은 토요일에도 오후 4시까지 하는 은행이 대부분임. 요즘 뜨고 있는 메트로 은행 같은 경우는 오전 8시에 열어서 밤 8시까지 영업할 뿐만 아니라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해 휴일에도 점포를 열고 있음. 즉, 365일 무휴 영업을 하는 것임.


4. 영국 은행이 재밌는 게, 은행들끼리는 서로 어떤 은행에서 돈을 찾든 수수료를 물리지 않음. 다 무료임. 다른 은행에서 돈 뽑는다고 수수료 한 1,000원씩 물리는 한국 은행하고는 좀 차이가 있음. 근데, 어떤 은행은 예금액이 적으면 수수료를 물리기도 하고 어떤 은행은 물리지 않고 막 그럼.


5. 그러니까 한국과 영국의 가장 큰 차이가 뭘까 생각을 해보니, 한국은 이것만 하라고 지정해 놓은 게 많은 반면, 영국은 이것만 하지 말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음.


6. 대표적인 게 교통 체계인데, 이곳은 중앙선이 대부분 점선임. 무슨 말이냐 하면 유턴, 좌회전, 우회전, 추월 등의 대부분이 가능하다는 의미임. 운전자가 판단해서 하면 됨. 따라서 주행 차선을 넘어서 하는 우회전(한국으로 치자면 길건너가는 좌회전) 등이 아주 광범위하게 허용됨. 처음 운전하다보면 무슨 이런 개판이 있나 싶은데 조금만 익숙하면 아주 편함. 기다렸다 길 건너 차선으로 들어가면 되고 양보도 아주 잘 해 줌.(런던애들은 잘 안 해 줌. ㅎ)  온 도로 신호등 천지인 한국과 달리, 신호등이 많이 없으면서도 양보와 배려를 통해 교통 흐름이 더 빠르고 자연스러움. 꼭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부족함을 문화가 보완해 준다는 느낌이 듦.


7. 하지만, 하지 말라고 지정한 것에 대해서는 정말 악착 같이 단속함. 주차 단속 같은 경우 무슨 클로킹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 보이던 주차 단속 요원이 주차만 하면 갑자기 나타나서 차들 훑고 다님. 벌금도 열라 쎔. 그러니까 벌금도 쎈데다가 반드시 걸릴 것 같은 느낌이 확실히 드니까 단속 요원이 안 보여도 다들 알아서 주차요금 냄.


8. 영국이 선진국인지라 이 나라 다들 많이 쉬는 줄 아는데 꼭 그렇지도 않음. 여기는 주당 근무일 수 곱하기 5.6일 정도가 1년 법정 연차 일수가 됨. 따라서 주 5일 모두 근무하는 직원이면 1년에 보통 5*5.6일= 28일 정도의 연차를 얻게 됨. 그리고 1년 법정 공휴일이 딱 8일에 불과하니 이 직원이 사용할 수 있는 휴가일수는 대략 36일정도임. 참고로 영국은 휴가 일수에 주말을 포함할 것인가 말 것인가도 협상 대상임. 즉, 주말을 포함해서 36일의 휴가를 준다고 하더라도 노동법 위반이 아님. 우리나라 신입사원 연차가 15일부터 시작하고 법정 공휴일이 16일임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 차이인가 싶기도 함. 물론 한국은 자기가 쓰고 싶다고 해서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울 회사 직원들은 대부분 적정하게 일 조율해서 안식월 휴가까지 잘 쓰는 것 같기도 하니. 흐음..)


9. 영국 제조업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아님. 여기 영국 국민 자동차 브랜드 복스홀도 있고, 닛산, 토요타, 지엠 등의 공장도 있어서 만만치 않은 제조업 국가임. 영국 브랜드를 단 재규어, 롤스로이스, 로터스 같은 영국 고유 브랜드의 수출이 최근 급신장하고 있다고 함. 주인은 바뀌었어도 공장은 유지하려는 노력이 가끔은 눈물겹게 뉴스에 나오기도 함.


10. 유럽국가들 요즘 경제 막장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영국 지난 달 실업율 6.0% 기록했음. 저 수치가 얼마나 놀라운 수치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임. 지난 달 한국 실업율과 실질 실업율 수치를 한 번 찾아보기를 권장함.


11. 그냥그냥 한국이 걱정됨. 물리적으로 남이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것들을 지금껏 혁신이라 생각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싶음. 진짜 굼벵이 같은 영국도 혁신을 위한 에너지가 가득하고 자기 갈 길을 뚜벅뚜벅 가는데, 빨리빨리의 대명사인 한국은 어디로 갈지 그 방향과 에너지를 모두 잃은 느낌이 너무나 확실해 보이니.


12. 내가 보기에는 정말 심각한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미지수...


2014년 11월 24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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