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의도에서 자전거 고장 났을 때 생각한 몇 가지 옵션을 여기 정리해 본다.

1.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자전거를 버리고 몸만 전철 타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6년 넘게 탄 여성용 장보기 자전거였고 여기저기 삐걱거려서 자전거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여러 차례 들던 차였다. 이건 기회야라는 생각이 꾸역꾸역 떠올랐다.

2. 자전거를 전철에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휴일이니 자전거 싣고 집 근처 역으로 간 뒤 끌고서 집으로 가면 되겠다 싶었다. 근데, 오래된 여성용 장보기 자전거를 전철에 싣고 가자니 쪽팔림이 눈앞을 가렸다.

3. 타다 같은 대형택시를 부르는 거였다. 다만 과연 이 자전거를 위해 내가 그 돈을 써야 하는가 하는 존재론적 의문이 들었다.

4. 끌고 집에 가는 거였다. 그래도 영국 살 때부터 타고 다녔던 자전거고 정도 많이 들었던 녀석인데 다시 고쳐서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앞뒤 바퀴는 굴러가는 상태여서 집까지 걸어서 끌고 가야겠다는 맘을 먹었다. 원효대사를 생각하며 이 모든 난관은 내 다리근육을 단련하기 위한 기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왔냐고? 자전거 의자를 낮춘 뒤 양발로 땅을 치며 타고 왔다. 생각보다 속도 잘난다. 오늘 밤 한강 변에서 어린애처럼 양발로 자전거를 밀며 탄 반백의 신사를 봤다면 그게 바로 나다. 부디 앞뒤 사정 모른 채 13일의 금요일 보름달 밤의 x친놈이라고 욕하지 말지어다. 진실이란 당신 눈앞의 광경이 전부가 아니다. 물론 나도 x나 쪽팔렸다.

 

2019년 9월 13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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