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 그렇듯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워지고 세 번째는 훨씬 쉬워진다. 오늘 세 번째로 밤에 자전거로 공주 다녀왔다. 처음과 두 번째와 달리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고 어디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자신감도 붙었다. 세종으로 이사 오고 밤에 자전거로 공주 다녀올까 몇 번 맘 먹었는데 결국 첫 시도를 하는 데까지 1년 넘게 걸렸다. 시내 빼놓고는 거의 가로등 없는 어두운 길을 달려야 하고, 주변에서 안전을 걱정하며 만류해서 그랬다. 어두운 길을 달리다가 고라니, 멧돼지, 뱀 같은 야생동물을 만나 사고당할 수 있다는 걱정이 많았다. 어떤 연구기관 박사가 고라니 피하다가 자전거에서 떨어져서 거의 두 달 치료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세종-공주 자전거 도로에서는 낮이든 밤이든 야생동물을 만나지 않기가 더 어렵다. 특히 밤에는 어두워 시야가 좁아지다 보니 갑작스레 나타나는 야생동물에 바로 대처하기 쉽지 않다. 자전거 앞으로 가로지르는 놈, 옆으로 같이 따라 뛰는 놈, 길옆에서 가만히 바라보는 놈 등 행태도 다양하다. 주로 고라니를 만나지만 오소리, 너구리, 두꺼비, 뱀도 만난다. 야생과 인간이 어우러진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선진 생태도시가 아닐까 생각하며 달리곤 한다. 

밤에 세 번 안전하게 이 길을 달려 보니 별것 아니네 하는 자만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밤에 겨우 세 번 안전하게 공주를 다녀왔다고 이게 일종의 '베스트 프랙티스'가 되기는 어려울 텐데 말이다. 이 좋은 봄 저녁에 세종-공주 자전거 길에서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구 38만의 세종과 인구 10만의 공주 사이를 밤에 아무도 자전거로 달리지 않았다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내가 직접 겪은 일은 간접적으로 들은 내용보다 훨씬 더 설득력을 가지기에 자신만의 세상과 인식을 강력하게 재구성하며 자기 경험을 과도하게 일반화한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하면서 말이다. 

2006년 미국 경제학자 울리케 말멘디어와 스테판 나겔의 연구 또한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그 둘은 미국 성인들의 투자 성향을 분석했는데, 사람들의 투자 성향은 본인 세대의 경험, 특히 성인 초기의 경험에 크게 좌우되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경제 판단을 한다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인플레이션이 높을 때 성장한 사람은 채권을 멀리했으며, 주식 강세일 때 성장한 사람은 더 많이 주식에 투자했다. 결국, 투자 성향은 개인의 경험에 좌우되는 것으로, 지능이나 교육 등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일종의 '경험 경로 의존성' 쯤으로 이름 붙일 수 있겠다. 

이 경로 의존성을 우리는 최근 일상적으로 목도하고 있다. 문부성 1호 장학생을 아버지로 둔 이가 아버지께 듣고 경험한 나라가 그렇지 않은 이들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아름답고 정직한 나라'라 표현했던 것이다. 유죄 아니면 무죄라는 검사의 눈으로 세상을 살았던 그 경험도 고스란히 한국 정치에 투영된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공통분모를 도출해야 하는 정치가 내 편 아니면 네 편의 법정 드라마가 되어버린 배경이다. 

서로 비슷한 경험 경로를 가진 이들이 집단을 이루고 소속감을 느낀다. 인간은 특정 집단에 소속감을 가질 때 다른 집단을 경계하고 때로는 적대시한다. 구멍가게같이 작은 회사에서도 부서가 같으면 동료의식을 가지고 부서가 다르면 왠지 남 같이 느낀다. 이렇게 소속감이 다른 여러 집단을 하나로 묶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조직 전체가 함께 에너지를 쏟을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고, 그 역할은 온전히 리더의 몫이다. 경험의 경로 의존성을 벗어나려는 리더의 성찰과 포용이 필요한 이유다.
 
2023년 4월 15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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