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탑은 어렸을 때부터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어렸을 때 시골 어르신들이 어렵게 어디 구경이라도 다녀오면 꼭 사 온 관광기념품 중 하나가 접이식 병풍 같은 작은 사진첩이었다. 네 폭이라 앞뒤 한 면에 한국의 유명 관광지 한 곳씩 총 8곳을 소개했다. 사 온 곳마다 조금씩 내용이 다르기는 했지만 내 기억에 불국사, 해인사, 남해대교, 마이산 탑은 거의 빠지지 않았다. 마이산 탑은 여러 관광지 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았는데 산과 탑의 모양새가 기묘하기도 했지만, 어르신들의 설명이 더 호기심을 자극해서 그랬다. 100년 전 어떤 분이 도력으로 돌탑을 세웠는데 태풍이 불고 지진이 나고 폭우가 쏟아져도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추운 겨울 대아에 물을 받아놓으면 고드름이 거꾸로 자라는 한국에서 매우 기가 쎈 곳이라는 설명도 더해졌다. 어렸을 때부터 마이산과 탑사를 한 번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도 뭐가 그리 바빴는지 오늘에야 왔다. 


마이산 탑은 1860년생인 이갑용 처사가 마이산에 입산한 스물다섯 살 때부터 돌을 손수 쌓아올려 만들었다.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국이 어지럽던 구한말이었는데 세상과 백성을 구원하라는 마이산신의 계시를 받고 탑쌓기를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탑이 세상에 알려지며 모은 돈으로 독립운동가를 후원하기도 했다. 탑사에는 이갑용 처사가 독립운동가와 함께 찍은 사진도 보인다. 그는 평생 120기가 넘는 돌탑을 쌓았고 그 후 40기가량이 유실되고 지금은 80기의 돌탑만 남았다. 전국 각지의 유명 돌을 가져다 쌓았다는 전설보다는 마이산의 타포니(Tafoni) 현상으로 인한 낙석을 활용했다는 주장이 정설로 보인다. 


잉글랜드 콘월 해변가를 가면 세계 10대 야외극장으로 유명한 미낙극장(Minack Theatre)을 만날 수 있다. 한 여인이 덤불과 갈매기만 가득하던 해안 절벽을 50년에 걸쳐 깎아내 만든 야외극장이다. 극장을 만든 이는 로웨나 케이드(Rowena Cade)다. 1차 세계대전의 음울함을 피해 콘월로 이주했던 그녀는 1929년 '한여름 밤의 꿈'을 무대에 올린 뒤 영구적 야외 무대를 갈망했다. 대안을 못찾던 그녀는 그냥 해안 절벽을 깎아 극장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그녀 나이가 서른여덟이었으며, 해봤던 육체노동이라고는 바느질과 마구간 청소가 전부였다. 1931년 겨울부터 비바람이 몰아치는 혹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원사와 함께 직접 극장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여섯 달 이상이 걸린 뒤 소박한 첫 석조 무대가 만들어졌고, 1932년 여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첫 공연작으로 올렸다. 제대로 된 조명 시설이 없어 배터리와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사용하여 무대 조명을 하기도 했다. 로웨나 케이드는 죽을 때까지 공연 시즌이 아닌 겨울에는 험한 날씨에도 빠짐없이 직접 바위를 캐며 극장 공사를 했다. 1976년에는 자신의 모든 삶이 고스란히 닮긴 이 극장을 사회에 환원했다. 지금 미낙극장은 세계적 야외공연장이자 관광지로서 그 유명세가 대단하다. 

 

 


'나무를 심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2026년 3월 1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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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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