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인가 1983년쯤이었던가 보다. 어머니가 형을 위해 전축을 사셨던 때가. 인켈이었지 싶다. 같이 살던 외갓집 형들이랑 친형이랑 돈을 모아 LP판을 사다가 밤마다 틀곤 했다. 옆에서 듣는데 흥겹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았다. 왜 이런 판을 사나 싶었지만 그래도 몇몇은 어린 나에게도 인상적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이먼과가펑클을 알게 됐는데 Sounds of Silence, El cóndor pasa, Bridge Over Troubled Water, Scarborough Fair 같은 곡을 들으며 역시 미국 가수들은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12년 전 이맘때 우리 가족은 이스터 할러데이를 맞아 잉글랜드 중북부와 스코틀랜드를 도는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첫날 케임브리지를 떠나 4시간 반가량 운전해 첫 목적지인 스카버로에 도착했다. 윗비 남쪽의 아름다운 해변도시쯤으로 들었는데 아침이 되고서야 난 이 외딴 도시가 사이먼과가펑클의 노래에 나오는 그곳임을 깨달았다. 도시 곳곳에서 쉼없이 Scarborough Fair를 들어서다. 스카버로 성에서 내려다본 북해는 검푸르게 뒤척이고 하늘은 푸르기 그지없었다. 앤 브론테의 무덤도 이곳에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요즘 한동안 Scarborough Fair 리스트를 만들어 계속 듣고 다녔다. 사이먼과가펑클, 사라 브라이트만, 피아노 연주곡, 관현악 연주곡 등. 가사의 의미를 모를 때는 그냥 아름다운 곡이었는데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관한 노래라는 사실을 깨달으니 더 마음이 애타고 마치 우리나라 민요처럼 느껴지더라. 그래서 더 자주 듣는다. 앵글로색슨 애들도 이런 감성이 있구나 하면서. 들뜬 마음도 다스려준다.

 

저 아이가 이제 내년이면 성인이 되고 나와 아내는 얼마 후 환갑이다. 아내랑 더 늦기 전에 여기저기 여행 다녀야 한다고 이야기하다 스카버로 이야기가 나왔다. 세상은 넓고 가서 보고 느껴야 할 곳은 많기만 한데 인류는 왜 서로 총질하느라 바쁜지 안타깝기만 하다. Scarborough Fair는 인류가 평화롭게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은유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홍빛 부대에서 울려 터지는 전쟁 나팔 소리, 장병들에게 죽이라고 명령하는 장군, 오래전 잊혀진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라는 외침이 가사에 나온다.

 

 

 

2026년 4월 5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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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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