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 그렇듯 직접 뛰면 두려움도 걱정도 사라진다.


새해가 되면 함께 마라톤 대회 나가자고 딸과 약속한 뒤 작년 12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 뛸 때는 1km도 제대로 뛰지 못했다. 조금만 뛰어도 호흡이 가빠져 걷다 뛰다 하며 겨우 첫 달리기를 마쳤다. 지인인 이임평 교수님으로부터 보폭을 줄이고 천천히 뛰라는 조언을 받고서야 조금씩 페이스가 올라왔다. 뛸 때마다 속도와 거리가 향상되더니 여덟 번째 연습에서 생애 첫 10km를 주파했다.


달리기도 자전거마냥 연습하면 별거 아니구나 하던 차에 사달이 났다. 1월 중순에 족저근막염이 생긴 것. 아침에 일어나 첫걸음을 내디딜 때 심한 통증이 오른쪽 발바닥, 특히 뒤꿈치 아랫바닥을 엄습했다. 증상이 심해 한 1주일 동안 절 듯이 다니기도 했다. 제대로 된 러닝화를 신지 않고 그냥 집에 있는 스니커즈류의 운동화를 신고 뛰었던 탓이었나 싶다.


족저근막염에 완치란 없다는 이야기도 듣고 발바닥에 계속 골프공을 굴려주며 근육을 풀어줘야 통증이 완화된다는 이야기도 듣고 족저근막염은 여자가 주로 걸리는데 왜 남자가 걸렸느냐는 걱정반의 농담도 들었다. 한 달 반 넘게 달리기를 멈추고 그냥 쉬었다. 통증이 거의 사라진 3월부터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횟수는 3~4번에 불과했다. 가장 길게 뛴 거리가 8km 정도였고 뛸 때마다 다시 발바닥이 아프면 어쩌나 걱정부터 앞섰다.


날이 본격적으로 풀리며 달리기보다는 좋아하는 자전거를 더 탔고 또 바쁘기도 해서 요새 2주 동안 거의 달리기 연습을 못 했다. 그런 탓인지 오늘 마라톤 대회가 걱정되더라. 평생 10km는 딱 한 번만 뛰었는데 족저근막염이 다 나았는지 어떤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도 연습이 부족한 상태에서 완주가 가능할까 그런 걱정도 들고 재미없는 달리기 대회를 왜 신청했나 갑자기 후회되기도 하고.


이 모든 걱정과 우려는 기우였다. 이른 아침 대회장에 가니 수많은 사람이 이미 배번을 달고 준비운동 중이었다. 나나 아내나 딸이나 모두 첫 대회라 정신없이 다른 사람들 따라하며 배번 달고 준비운동 하다 보니 걱정할 겨를도 없더라. 그다음에 바로 출발했다.


몸 상태를 알 수 없는지라 목표를 낮게 잡았다. 뛰든 걷든 완주만 하자고 다짐했다. 출발하고서 철저하게 내 페이스대로 뛰고자 했다. 보폭을 줄이고 천천히 뛰되 나중에 힘이 남으면 좀 달려보자는 생각이었다. 딸애는 1.5km 정도까지 이런 아빠와 보조를 맞추더니 그 뒤 바로 치고 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답답했던 모양. 그러거나 말거나 주변 아름다운 봄날을 완상하자는 생각으로 느릿느릿 달렸다.


마라톤 코스는 지리산 자락의 지방도였다. 평소에는 차가 이 도로의 주인이었지만 오늘만은 사람이 주인이 되어 도로를 뛰었다. 봄 하늘은 푸르렀고 새털구름이 나서 햇볕을 가려줘 고마웠다. 메타세콰이어에 새순이 올라오고 도로 옆 개울에 봄기운이 가득했다. 먼 산에는 아직 지지 않은 벚꽃과 연초록의 신록이 점점이 번져갔다. 주변 봄 풍광과 앞서 달리는 사람들만 바라보며 달리다가 자원봉사하는 학생들에게 수고한다고 인사하고 교통통제하는 모범택시 운전수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달렸다.


다리가 아픈지 발바닥이 어떤지 그런 생각이 들 겨를도 없더라. 8km 지점을 통과하면서 아직 힘이 남았구나 깨닫고 속도를 끌어올렸다. 남은 2km 동안 제법 많은 사람을 추월하고 결승선에 들어왔다. 온몸은 땀범벅이었지만 아내나 나나 딸이나 모두 아름다운 남도의 봄에 흠뻑 세례받은 꿈같은 달리기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은 너무 행복한 여행이었다고 계속 쫑알거린다. 참고로 딸은 나보다 10분 일찍 결승선을 통과했다. 청출어람이로다.

2026년 4월 12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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