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년 전에 우리 몸으로 들어와 이제 우리와 운명공동체가 되어버린 장내 미생물은 인간의 노화, 체중, 피부상태, 염증, 알츠하이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인간 질환에 영향을 준다. 최근에는 장내 미생물과 정신건강의 관계를 설명하는 '장-뇌 연결축(Gut-Brain Axis)' 연구까지 등장했다. 연구의 결론은 명확하다.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장에서 시작한다. 가공식품을 줄이고 풍부한 식이섬유를 섭취하는 습관은 단순한 소화기 건강을 넘어, 뇌의 염증을 예방하고 기분을 안정시키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이다.
우리말에서 식구(食口)란 글자 그대로 함께 밥(食)을 먹는 입(口)을 뜻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식구는 비슷한 가치와 경험을 공유하는 동료나 집단을 의미하는 경우가 더 많다. 조폭들이 '우리 식구' '저쪽 식구'하듯 말이다. 밥을 함께 먹으며 동료가 되는 경험은 우리나라나 동양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동일하다. 영어에서 동료를 의미하는 Companion는 라틴어 Com(함께) + Panis(빵)가 합쳐진 말이다. Companino은 말 그대로 '빵을 함께 나누어 먹는 사람'으로, 우리말의 '식구(食口)'와 일치한다.
오늘 매일경제에 실린 KAIST 이상엽 교수의 글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동물집단을 분석해 보면 유전적 유사성보다 실제로 얼마나 자주 접촉하고 함께 생활했는지가 장내 미생물 구성을 더 잘 설명해준다고. 즉, 사회적 교류가 밀접한 개체들 사이에서는 장내 미생물 군집이 점차 비슷해진다. 사회적 접촉은 미생물의 교환을 촉진하고, 다시 공유된 미생물은 집단 내 상호작용을 더욱 강화하는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결국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며, 누구와 교류하는지가 장내 미생물의 구조를 바꾸고, 그 변화는 다시 우리 몸과 뇌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쩌면 '식구'와 'Companion'은 이런 생물학적 과정의 결과물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주역의 가인괘에 따르자면 식구와 가족은 다르다. 좋든 싫든 남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이가 식구라면(2괘), 식구들이 어려움과 난관, 시련을 겪으며 투덜거리고 후회하면서도 큰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나아가는 이들이 가족이 된다(3괘). '서방파 식구'는 많아도 '서방파 가족'은 없는 이유다. Family와 companion이 다르듯.

2026년 4월 29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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