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류에게 장미빛 미래를 보장할까? 내가 보기에 불가능하다.
샘 올트먼은 '지능의 시대'를 선언하며 수천 일 안에 초지능이 도래해 기후위기와 질병과 빈곤을 해결한다고 장담했다. 일론 머스크는 올해 초 다보스 포럼에서 AI와 로보틱스가 '풍요로 가는 길'이라며, 앞으로 10~20년 내에 노동이 선택사항이 되고 돈이 무의미해진다고 이야기했다. AI 긍정론자들의 약속은 모두 하나로 수렴한다. AI가 인류를 풍요롭게 하고, 그 풍요가 인류의 오래된 고통을 해결해 준다는 약속.
난 이 약속이 구라라고 생각하고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이미 실험을 해봤고 그 결과를 뻔히 알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는 매년 100억 명 이상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한다. 2022년 한 해에만 10억 5천만 톤의 식량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같은 해 7억 8,300만 명이 굶었다. 의류 산업은 생산한 옷의 30% 이상을 팔지 못하고 폐기한다. 전 세계적으로 1년 동안 생산되는 생수용 플라스틱 병은 대략 6,000억 개에 달한다. 이중 35%만이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바다와 자연을 뒤덮는다. 전 세계가 주택난에 시달린다지만 어느 나라나 빈집은 상당하고 누군가는 길거리에서 잠든다.
인류는 AI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전 세계 모두가 굶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될 만큼의 생산력을 달성했다. 인류 대부분의 문제는 생산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분배의 정의가 작동하지 않아서다.
지난 5년간 전 세계에서 새로 창출된 부의 63%를 상위 1%가 가져갔다. 나머지 99%의 인류가 남은 37%를 나눠 가졌다는 뜻이다. 2025년 현재 세계 최고 부자 12명이 보유한 2조 6,000억 달러는 인류 하위 50%에 해당하는 40억 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미국에서는 1989년 이후 상위 1% 가구의 부가 4배로 불어 50조 달러에 이른 반면, 하위 50%의 자산 점유율은 3.5%에서 2.4%로 쪼그라들었다. AI가 발명되기도 전 인류사상 가장 많은 부가 창출된 지난 35년 동안 벌어진 일이다.
AI와 로봇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이 곧 인류의 풍요와 분배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선형적 주장은 단순하고도 순진하다. AI가 생산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고 해서 지금껏 작동하지 않던 부의 분배 문제가 갑자기 정상화될 리가 없다. 생산성이 향상되고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나는데도 불평등과 분배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을까?
우선, 우리가 지금 최첨단 AI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의 뇌는 여전히 7만 년 전 수렵-채집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유전자에는 결핍이 각인되어 있다. 인류 역사의 99%는 굶주림과의 싸움이었다. 우리 뇌는 포만감이나 만족을 느끼도록 설계되기보다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축적하도록 진화했다. 이러한 진화적 유산은 현대 사회에서 무한 탐욕으로 나타난다. 아무리 부가 넘쳐나도 우리 뇌는 결코 '이제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AI가 빵과 상품을 무한히 생산하더라도 우리의 유전자는 그 풍요 속에서 여전히 결핍의 공포를 느끼며 계속 '더 많이 더 많이' 소유하려 한다.
다음으로, 사회적 동물인 인류의 한계다. 인류는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는 역할을 분담한다. 사회(社會), 회사(會社), 인간(人間).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들이 우리가 무리를 짓고 관계를 통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잘 드러낸다. 모일 회(會), 사이 간(間). 무리 짓는 종에게 역할 분화는 필연이고, 역할 분화는 곧 위계로 굳어진다. 위계 구조가 반드시 수직적 착취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자원 분배의 불공평과 비대칭성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인간이 '절대적 부'보다 '상대적 지위'에 더 민감하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론 머스크의 주장처럼 AI가 모두에게 기본 소득(UBI)을 제공하더라도 인간은 그 안에서 다시 '누가 더 상위에 있는가'와 '왜 누가 더 많이 받아야 하는가'를 가릴 새로운 위계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을 게다. 위계 구조는 자원을 분배하는 힘을 의미한다. AI라는 강력한 도구가 등장했을 때 이 도구를 통제하는 소수가 그 권력을 자발적으로 내려놓으리라는 기대는 지금껏 인류가 보여준 권력의 속성과 배치된다. 생산수단이 논밭에서 공장으로, 다시 데이터센터로 바뀌었 뿐 소유의 규칙은 그대로다.
지금은 스탠포드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에릭 브린욜프슨은 MIT 교수 시절 AI가 가져올 미래로 '디지털 아테네'를 제시했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이 여유로운 삶 속에서 예술, 민주주의 등을 꽃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노예들이 힘든 노동과 생산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AI와 로봇에게 고대 노예의 역할을 맡기고 그 여유를 인간이 누려야 한다는 주장이 '디지털 아테네'가 그리는 미래상이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그는 '디지털 아테네'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기술이 자동으로 부를 분배하지는 않는다고. 번영의 공유지, 즉 '디지털 아테네'는 제도 설계의 결과이자 싸워서 쟁취해야 할 선택지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풍요의 시대가 곧 평등의 시대라는 약속은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자동으로 이행된 적이 없다. 지금의 AI 낙관론이 위험한 이유는 풍요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것이 저절로 분배되겠지하는 착시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아테네는 만들고 이뤄내야 하는 목적물이지 저절로 도래하는 천부인권이 아니다. 디지털 아테네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인류가 도달할 곳은 어쩌면 아테네가 아니라 로마일 가능성이 더 높다. 시민이 아닌 평민, 광장이 아닌 콜로세움의 로마 말이다. 검투사 경기가 시민의 눈을 가렸듯 기본 소득이라는 배급제로 대중을 생산 수단(AI)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시스템에 종속된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키는 '디지털 로마' 말이다.
기술이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 때 누가 그 장미를 소유하고 누구에게 향기가 돌아가는지를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우리 세대를 위하든 자식 세대를 위하든.
2026년 4월 22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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