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송역 플랫폼에서 서울행 KTX를 기다리다 문득 "아, 세상은 얼마나 신비로운가? 앞으로 또 10년 뒤에는 어떤 세상이 나를 기다릴까?"하는 생각과 함께 묘한 설렘이 일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시간 남으면 휴대전화 안 보고 주변을 관찰하거나 종이신문을 본다. 오늘도 플랫폼에서 역 밖의 간판을 하나하나 읽어가다 저런 생각이 들었다. 뷰자데(Vuja De) 현상이다. 익숙한 상황이나 대상을 마치 처음 접하는 것처럼 낯설게 느끼거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험이다. 


10년 전에 내가 세종에 살리라고 상상도 못했고, 더 길게 15년 전에는 아내가 영국으로 발령나 케임브리지에 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니, 20년 전 우리 부부는 애를 가질 계획도 없었다. 


돌아보면 우리네 삶은 계획보다는 그때그때의 순간적인 선택과 운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네 삶에 이유와 서사를 부여한다.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의미를 찾는다. 계획과 노력의 결과인 듯. 진화적으로 발전한 심리적 기제일 뿐이다. 삶의 우연성을 애써 외면하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우리는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은 직접적으로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선형적 결정론이다. 작은 일에는 작은 원인이, 큰 일에는 큰 원인이 작용했으리라 믿지만 이런 믿음이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일에 꼭 직접적인 원인이 있지도 않으며,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삶이나 운명의 통제성을 움켜쥘 수도 없다. 이 세상은 극도의 복잡계다. UCL의 브라이언 클라스 교수가 주장했듯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 


과거에 얽매여 후회할 필요도 계획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이유도 없다. 순간순간 충실하면 된다. 노력하되 너무 애쓰지 말자. 새로운 문이 열릴 때마다 또 다른 배움과 경험이구나 하면 그만이다. 변화무쌍하게 바뀌었을 10년 뒤를 상상하며 말이다. "아, 대부분의 삶은 계획대로 안 된다구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하면서. ㅎ

 

2026년 5월 7일

신상희 

Posted by 뚜와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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