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천군 대장경천년관 한 곳은 넓은 바다와 같은 불가의 가르침 중 요긴한 몇 개를 추려 벽에 전시해 뒀다. 그중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화엄경 구절이 눈을 잡아끈다. 구례 화엄사는 사찰길 우측 석축 옹벽에다 '一切唯心造'를 아예 새겨놨다. 화엄경의 중심 사상이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일화로 유명한 가르침이다. 어두운 한밤중에 목이 말라 마셨던 그 달고 시원했던 물이 다음 날 아침 해골에 고인 썩은 물임을 알고서 세상의 모든 일이 결국 마음에 달렸구나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동양과 불교에서만 이런 유심론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영국 시인 존 밀턴은 "마음은 자신만의 장소이며, 제 스스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고,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경험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한 당신의 행위다."는 통찰을 보여줬다. 자기계발 분야에서 유명한 조셉 머피나 론다 번같은 이들은 더 극단적으로 "믿는 대로 현실이 창조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실은 두 가지 층위로 이뤄진다. 일어난 일과 관련된 '객관적 현실'과, 일어난 일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며 해석되고 어떤 의미를 띠는지와 관련된 '주관적 현실'이 그 둘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에 따르면 객관적 '자극'과 이에 대한 주관적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서의 선택이 우리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
마음만으로 '공간'에서의 선택이 자유롭다면 우리는 이미 부처고 예수고 도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경사길은 절벽처럼 다가오겠지만 가마나 말에 올라탄 이에게 그 길은 그저 조금 불편한 길이다. 일반인에 비해 운동선수가 오르막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며, 과체중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같은 거리를 더 멀게 느낀다. 당연한 이치다.
사람들은 '자극'이 들어오는 매순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신체적, 지적, 사회적,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며 빅터 프랭클이 언급한 '공간'에서 '반응'을 고르고 선택한다. 그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다. 마음만으로 안 된다. 예수님처럼 부처님처럼 원효대사처럼 다 비우고 살지 못한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우리같은 범부는 마음공부에만 온 시간을 바치기 어렵다. 마음공부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지적, 사회적, 경제적 능력을 확장시키는 활동을 통해 선택공간을 넓히고 키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쉽게 말해, 운동하고 공부하고 좋은 인연을 맺고 돈을 잘 벌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일반인은 열쇠형 인재가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육각형 인재가 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
근데 써놓고 보니 이 글도 다 마음에 있던 거네. 아, 이러면 나가린데...
2026년 5월 17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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