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공공계약 선금 관리 강화 제도(선금 전용계좌 도입, 지급율 하향 등)에 관해 글을 올렸더니 여기저기 전화를 많이 주시네요. 대부분의 문의가, "선금 받으면 어떻게 정산이나 사용 검증을 하는 거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답은 이렇습니다. "그때그때 다릅니다. 기관마다 다릅니다." 맞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재정경제부나 조달청 사이트에도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선급 지급 비율 및 운영 방침은 기관마다 다르니 반드시 발주기관에 문의하여 선금 신청할 것."
어떻게 운영되는지 제 경험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A 기관은 선금 중 인건비로 책정된 금액은 실제 직원 급여 통장으로 바로 이체하라고 안내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금 부정 사용으로 간주한다고 합니다. 나중에 관련 증빙 서류도 모두 받겠다고 합니다. A 기관의 선금 사용 규정이 워낙 까다로워 선금 안 받겠다고 계약 부서에 이야기했더니 사업 실무자를 통해 연락왔습니다. 선금 받으셔야 한다고. 재경부나 조달청이나 선금 받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해서 안 받는 거라고 했더니 "강요가 아니라 요청 드리는 겁니다."는 답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강요가 아니라 요청입니다.
B 기관은 첫 선금 30%에 대해서는 실제 직원 급여 통장으로 이체하도록 하는 등 A 기관처럼 까다롭게 관리하겠지만, 첫 선금을 정산해 본 뒤 별문제 없으면 다음 선금부터는 정산없이 지급하겠다고 합니다.
C 기관은 선금 전용계좌도 도입해야 하고 선금도 정산이나 검증대상이라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답변이 모호합니다. 법인 통합운영계좌로 이체한 뒤 급여를 지급해도 되는지 어떤지 답이 두루뭉술합니다. 리스크가 커보여 선금 안 받겠다고 했더니 역시 사업 실무자를 통해 선금 받아가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사업 PM 입장에서는 어려운 조달과정을 거쳐 계약하고 이제야 사업을 시작하니 발주처와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경영지원팀에 선금을 받자고 요청하게 됩니다.
근데, 경영지원팀 입장에서는 이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각 사업별 투입인력 급여를 비율대로 잘 쪼개서 관리하고 급여 이체를 해야 합니다. 각 기관별로 정산이나 관리 규정이 다 다르다 보니 이를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실수할 위험도 꽤 큽니다. 나중에 문제 생겨 받은 선금의 일부나 상당액을 반납해야 하는 위험도 높습니다.
이런 행정 낭비는 회사와 발주처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선금 전용계좌 개설때문에 금융기관도 스트레스입니다. 법인계좌 개설을 위해서는 법인등기부등본, 사업자등록증 등 많은 서류와 개설 사유를 증빙하는 서류(계약서 등)가 함께 제출되어야 합니다. 금융기관은 그 서류를 모두 창구에서 접수하고 검증한 뒤 계좌를 개설해줘야 합니다. 이번 제도 변경으로 발주처, 사업자, 금융기관 모두 불필요한 가짜노동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아니, 불필요한 통장 만드느라 은행직원이 바빠서 실제 도움을 받아야 할 금융약자가 제대로된 도움을 못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정부는 규제 없애겠다고 맨날 약속하는데 없는 규제나 그만 만들었으면 합니다.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험도 없는 이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제대로된 의견수렴 없이 제도를 만들어 놓으니 현장이 얼마나 난장판입니까? 이런 국가적 행정 낭비에 대해 도대체 누가 책임을 지는 겁니까? "우리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규정 바꿨으니 현장에서는 알아서들 하시고 나는 모르겠고" 이상의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2026년 7월 16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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