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물리학의 역사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 보자.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 이후 많은 물리학자들은 뉴튼 역학을 이용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실제 많은 자연계의 현상들은 뉴튼 역학과 이를 보정한 방식으로 충분히 해석되었고, 또 이를 응용하여 많은 기술적 발전을 이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원자와 분자 수준의 현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 뉴튼 고전 역학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많은 과학자들이 발견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우리는 결국 양자 역학의 등장을 목격하게 된다.
<뉴튼에 의지해 사실 우리 회사도 먹고 사는 게 아닐까?>
월스트리트저널이 '21세기 최고 경영 구루(Guru)'로 선정한 게리 해멀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이 경영학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이 책 '경영의 미래'를 통해 지적하고 있다.
<게리 해멀>
게리 해멀에 따르면, 현재의 많은 회사들은 20세기 초반에 창안된 경영 이론에 입각해 운영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영 이론은 기업의 경영 전반에 매우 널리 퍼져 있기에 각 기업들이 보여 주고 있는 경영 기법 또한 그닥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 또한 전 세계의 많은 경영대학에서 MBA 학생들에게 소위 경영의 비책이라는 것을 가르치지만, 그 내용 또한 이러한 20세기적 경영 이론의 개정판일 뿐 경영을 바라보는 관점은 과거의 그것에서 거의 한치도 벗어나 있지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빠른 변화 속도, 불확실성, 불안정성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21세기의 경영 환경에서 과거의 20세기적 경영 이론과 기법으로는 성장 자체는 고사하고 생존 자체도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이미 많은 기업들이 21세기의 빠른 시장 변화에 '운영 혁신', '제품 혁신', '전략 혁신(Business Model Innovation)' 등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하부적 혁신 만으로는 21세기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며, 근본적인 경영 철학의 변화를 통해서만이 21세기 시장 환경에서 적응하고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즉, 과거와의 단절, 20세기 경영 이론의 탈피와 극복이야말로 미래 경영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게리 해멀이 '경영 철학자'로 불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게리 해멀은 21세기의 경영 환경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특징 짓고 있다. '빠른 변화 속도', '규모의 경제를 의미없게 만들어 버리는 신기술',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진입 장벽', '가속화되는 시장 참여자의 탈수직구조화', '급격한 디지털화', '강력해지는 소비자의 권한', '빨라진 전략 및 제품 주기', '세계화' 그리고 '혼란과 복잡성'. 과연 이러한 21세기의 경영 환경을 '권한과 위계', '통제와 계획', '분업과 표준화' 등으로 규정되어지는 20세기적 경영 이론으로 잘 대응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도 고통스럽다>
게리 해멀은 21세기 미래 경영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이 책을 통해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실제 21세기 미래 경영의 사례로 언급될 수 있는 몇몇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게리 해멀은 진화생물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 앞으로 21세기 경영의 핵심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 향상'에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생태계처럼 스스로 자발적인 재생이나 부활이 가능하고 또 급격한 변화에도 위기를 극복하는 조직이 되어야 21세기 경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아갈 방향으로 그는, '수평적 구조', '스스로 일하는 창의적인 조직', '다양한 혁신 유전자 풀의 준비', '기존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출', '변두리의 활동을 중심으로 유입시킬 수 있는 다양성의 옹호' 등의 방향을 21세기 미래 경영의 방향으로 제시한다.
게리 해멀은 21세기 미래 경영의 실례로서 홀푸드, 고어(고어텍스로 유명한), 그리고 구글을 들고 있다. 홀푸드는 미국 유기농 유통업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인데, 본사가 아니라 각 지점에서 일하는 일선 종업원이 어떤 상품을 전시 판매하고, 어떻게 매장을 꾸밀 것이며, 심지어 직원 채용 여부까지를 직접 결정하는 회사이다. 과거의 일반적인 식품 유통 회사와는 전혀 다른,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경영 모델을 따르고 있지만, 홀푸드가 기록하고 있는 성장과 이익은 놀라울 정도다. 고어텍스로 유명한 고어는 놀랍게도 직원들의 투표를 통해 사장을 선출하는 회사다. 또한 이 회사는 직급의 의미가 거의 없으며, 어떤 팀을 책임질 팀장이 필요할 경우 역시나 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직원들은 자유롭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을 통해 고어텍스 뿐만 아니라 수술용 실, 기타(Guitar) 줄과 같은 엉뚱한 시장에서도 지배적인 사업자로 활동하고 있다. 구글이야 워낙 잘 알려진 회사라 이곳에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이 세 회사는 모두 앞서 해멀이 언급한 21세기 미래 경영을 위한 방향을 잘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21세기 미래 경영의 사례>
자, 그렇다면 위에서 해멀이 언급한 그러한 21세기 미래 경영 방향을 따르기만 하면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대답은 사실 글쎄다. 제도 자체를 형식적으로 모방하는 것이야 가능하겠지만, 실제 그러한 제도 자체를 회사의 DNA처럼 만들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해멀이 주장한 저러한 방향은 내 주변의 많은 지인들이 지향하는 회사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주변에서 저러한 아름다운 철학을 가지고 회사를 창업했지만 결국 회사가 망하거나 또는 지리멸렬한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철학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경영 철학 자체에만 집착하며 어떻게 회사를 생존시키고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 중이다.
작년에 MBA를 하는 동안 사실 위에서 언급한 홀푸드, 고어, 그리고 구글에 대한 케이스 분석을 한 적이 있는데, 위 세 회사는 모두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었다. 그것은 첫째, 상호 존중에 기반한 철저한 내부 경쟁을 활성화 시키고 있다는 점이며, 둘째, 모든 회사가 고수익을 목표로 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홀푸드, 고어, 구글은 모두 각 팀의 성과를 회사 내에 공개하며 더 노력한 팀과 개인이 더 많은 성과를 받을 수 있도록 철저히 제도화하여 내부 경쟁을 활성화하고 있다. 또한, 이 세 회사 모두 철저히 무임승차자를 방지하기 위한 자신들만의 제도를 가지고 있다. 고수익 달성도 마찬가지다. 홀푸드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존 매케이는 회사의 고수익 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고수익 달성의 당위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우리는 보다 높은 품질과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통해 세계 모든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향상시키길 원한다. 따라서 수익성이 높지 않으면 이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 즉, 고수익만이 자신들의 사명(mission)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직원, 경영진 그리고 주주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다시 실천과 노력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과제다. 책을 읽고 이런저런 자리에서 게리 해멀의 사상과 철학을 이야기하고, 또 앞서 나가는 선진 기업의 사례를 부러워하기는 쉽겠지만, 이러한 해멀의 사상을 실제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자리에서 실천하기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먼저 이러한 변화를 깨닫고 이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이미 실천에 착수했다고 희망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왜냐면, 언제나 그렇듯이 시작이 반이니까..
경영의 미래, 게리 해멀 지음, 신희철 김종식 공역, 세종서적, 2009년
2011년 2월 21일
신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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